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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무
수리무23.03.25

고려 공양왕은 결국 어떻게 되었나요?

공양왕은 고려의 마지막왕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성계에게 왕위를 바친 후에

공양왕은 어떻게 되었나요?

다른 왕씨처럼 결국 죽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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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7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3.25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공양왕은 울면서 즉위하고 울면서 물러난 비참한 왕이었다고 합니다.

    재위기간 딱 3년.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한 뒤에 창왕을 즉위시켰다가, 신돈의 자식이니 뭐니 해서 폐위시킨 후 어쩔 수 없이 왕이 되었는데요.

    공양왕은 그래도 처음에는 고려왕조만큼은 멸망시키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이성계에 반하는 정몽주와 손을 잡거나 반대파에게 힘을 실어 주었으나 역부족이었고 결국은 이성계에게 덕이 없다는 이유로 폐위될 때에는 자신의 목숨하나 건지는 것으로 목표를 바꿔서 최대한 비굴하게 나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 2년 뒤 삼척에서 살해되고 맙니다.

    그냥 왕족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수모를 당하고 비참한 죽음을 맞은 왕이었죠.

    그의 시호까지 공손하게 왕위를 물려준 왕이라고 했으니 참 안된 왕입니다.


  •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이름 요(瑤). 신종(神宗)의 7대손이며, 정원부원군(定原府院君) 균(鈞)의 아들이다. 비(妃)는 창성군(昌城君) 진(稹)의 딸 순비(順妃) 노씨(盧氏)이다. 당시 중국에서는 원(元)나라에서 명(明)나라로 바뀔 때였으므로, 조정에서는 친원파(親元派)와 친명파(親明派)의 대립이 격심했으며, 친명파의 이성계(李成桂)는 위화도회군(威化島回軍) 뒤에 창왕(昌王)을 즉위하게 하였으나, 음모를 꾀했다는 이유로 창왕을 폐위시키고, 1389년 공양왕을 즉위시켰다.

    공양왕은 정몽주(鄭夢周)를 중심으로 한 기존 정치세력(勢力)에 이어 새로 실권을 잡은 이성계에게 완전히 실권을 빼앗겼다가, 정몽주가 살해된 후 덕이 없고 어리석다는 이유로 폐위당하였다. 이로써 고려는 34대 475년 만에 망하였다. 공양왕은 폐위된 뒤 원주(原州)에 추방되어 공양군(恭讓君)으로 강등되었다가 2년 뒤에 삼척(三陟)에서 살해되었다. 고려의 왕가(王家)였던 왕씨는 이성계 세력에 의해 멸족을 당했으며, 강화도로 집결하라는 명을 받아 배를 타고 강화도로 건너가던 중 배를 침몰시켜 많은 왕씨들이 수장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공양왕 [恭讓王]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 안녕하세요. 경제&금융 분야, 재무설계 분야, 인문&예술(한국사) 분야 전문가, 지식iN '절대신 등급' 테스티아입니다.

    ✅️ 네, 조선 건국 후 이성계에 의해 사실상 죽임을 당하였으며, 어떻게 죽임을 당했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존재하는 상황입니다.

    - - - 답변이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과 좋아요 눌러주시고, 추가적으로 궁금하신 점은 의견으로 남겨주시면 답변드리겠습니다. - - -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 제34대 군주이자 마지막 군주로 제 33대 창왕이 폐위되자 이성계 일파에 의해 고려의 군주로 옹립되었으며 정치적 야심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성계 일파는 그를 무혈 선위의 도구로 사용했고, 왕위에 오른 뒤에 본색을 드러내며 정몽주와 함께 자미맏으로 반전을 노렸지만 무위로 그친 끝에 폐위되어 유배당한 뒤 처형당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공양왕(재위 1274년~1308년)은 고려의 31대 왕으로 이성계(태조)의 아들인 왕자였습니다. 이성계가 1270년에 개경(현재의 북경)을 점령하고 조선을 건국하자 고려는 멸망하게 되었고, 이성계는 아들 공양왕을 품고 이후 4년간 여러 지방에서 숨겨지며 유배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 후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왕위에 오르자 공양왕은 조선으로 돌아와 대명군(조선의 초대 군주)으로 삼혔습니다. 그러나 공양왕은 왕위 계승권을 갖고 있어 이후 여러 차례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1388년에는 장기령에서 왕위를 노리는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고 목숨을 잃었습니다.

    즉, 공양왕은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후 조선의 대명군으로 살았으며, 반란을 일으켜 살해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보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원의 간섭에서 벗어나기를 엄청나게 노력을 했지만 밑으로는 왜구의 침략으로

    계속 힘들어지게 되었고 노국공주가 죽고나서 신돈에게 개혁을 하라고 했지만

    부패하게 되어서 더이상 개혁을 하지 못하는 결말이 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 공양왕은 1274년부터 1308년까지 35년 동안 고려 왕위에 있었던 왕이었습니다. 그는 개화파적인 왕으로, 기존의 관습적인 국내 왕권 강화보다는 외교적 전략을 중시하였습니다.


    그러나, 공양왕은 국내 정치에 대한 신경을 써주지 않았고, 대신 외교적인 활동에만 집중하여 국내에서는 점점 불만이 쌓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양왕은 정치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되어, 1308년 평양으로 추방되었습니다.


    추방된 후, 공양왕은 평안도에서 유럽으로의 여행을 계획하였으나, 이를 무산시키고 스스로 몸을 물리쳐 자살하였습니다. 이후, 공양왕의 몸은 평양의 산골의 한 지역에 묻혔으며, 그의 후계자는 곧바로 그의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