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건국에 참여하는 않은 온건파 사대부는 향촌에서 사학으로 후진을 양성하였습니다. 이들은 사림이라 하며 성리학적 왕도 정치를 강조하고, 향촌 자치를 중시였습니다.
그런데, 세조 당시 훈구 세력이 확대되자 성종은 이들을 견제하기 위해 사림을 등용하였으며, 주로 3사의 언관직을 맡아 훈구 대신들을 견제하면서 사림파를 형성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림파의 도발이 계속되자 훈구 세력은 연산군을 조정하여 무오사화, 갑자사화, 그리고 중종 당시 기묘사화, 명종 때 을사사화를 통해 사림에 보복하였습니다.
즉, 사화가 발생하는 요인은 기득권 세력인 훈구와 신진 관료의 사림들 사이의 정치적 대립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