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왕족 중에서 박씨 성을 가진 왕족은 어떻게 됐나요?
신라의 시조는 박혁거세이고, 박씨인데요. 신라는 박씨, 석씨, 김씨가 번갈아 왕을 하였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김씨만이 왕을 세습하였는데요. 그렇다면 박씨 성을 가진 왕족들은 어떻게 됐나요?
신라 초기 박씨, 석씨, 김씨 세 성씨가 번갈아 왕위를 계승하여 3성 교체 왕위 체제가 이어졌습니다. 박혁거세를 시작으로 2대 남해차차웅, 3대유리이사금, 5대 파사이사금, 6대 지마이사금, 7대 일성이사금, 8대아달라이사금,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 55대 경애왕 등 10명에 해당됩니다.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
신라 건국 초기에는 박혁거세(1대), 석탈해(4대), 김알지의 후손(13대 미추왕 이후) 등이 각기 다른 성씨로 왕위를 계승하며 비교적 평등한 권력 분점 체계를 형성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김씨가 정치적·군사적 기반을 강화하고, 귀족 사회 내에서 영향력을 키워나가면서 왕권의 중심이 되어 갔습니다.
특히 4세기 중엽, 내물왕(17대, 김씨)이 즉위하면서부터 왕위가 김씨 일족에 의해 세습되기 시작했고, 이후 점차 김씨 왕권은 고정되며 왕위 독점 체제가 굳어졌습니다.
내물왕은 마립간이라는 칭호를 사용하며 중앙 집권 체제를 강화했고, 외적으로는 고구려와의 관계를 통해 군사력을 보강하는 등 정치적 입지를 굳혔습니다.
그 결과 박씨나 석씨 계열의 왕족은 더 이상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지 못하게 되었고, 이들은 이후 신라의 중앙 귀족층 혹은 지방 세력으로 변화해 갔습니다.
특히 박씨는 경주 지역 등지에서 유력한 지방 귀족으로 존속하거나, 때로는 군사·행정적 실권을 가진 관직을 통해 명맥을 유지했습니다.
일부는 사찰을 세우거나 불교의 후원자로 활동하면서 종교와 문화 분야에서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김씨 왕권이 강화됨에 따라 박씨 왕족은 정치적 중심에서는 점점 멀어졌고, 점차 '왕족'이라기보다는 '귀족'의 위치로 변화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