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송종민 과학전문가입니다.
관상감 관리들은 세종 때 장영실이 만든 측우기(測雨器:실제로 문종이 세자시절에 만들었다고 함)로 비가 내린 양을 기록해 장마철이 언제 시작되고, 비는 얼마나 내릴지도 예측하여 농사에 도움이 되게 하였다.
관상감 관리들이 날씨나 천재지변을 기록하고 예측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으므로, 만약 날씨나 천체 현상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면 큰 벌이 내려지기도 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왕의 비서라고 할 수 있는 승정원 관리들이 천문의 변화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관상감 관리에게 벌을 줄 것을 임금에게 아뢰는 내용이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조선 10대 왕 연산군은 관상감에서 지진이 났음을 아뢰자, 어리석은 사람들이 천문을 논하는 것은 하늘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이라 하여 관상감을 없애 날씨나 천재지변을 예측하지 못하게 했다. 그 대신 관상감의 이름을 사력서(司曆署)로 바꾸고, 날씨를 기록하는 일만 하도록 했다.
보통 조선의 왕들은 천재지변이 나면 스스로 덕이 부족해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여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히 했다. 그러니 나랏일과 백성에는 관심이 없고 연일 잔치를 벌였던 연산군은 천재지변을 이유로 향락을 멈추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산군이 쫓겨나고 중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사력서는 다시 관상감이라는 원래의 이름과 기능을 되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