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 전염병에 걸리면 죽을때 죽더라도 한양에 한번 가보자, 혹 나라님이 구해줄지도 모른다는 심리로 전염병이 돌면 도성밖으로 사람들이 몰렸는데 반면 조정에서는 전염병이 도성 안으로 들어오면 임금을 해할수 있다하여
대비책으로 한양 밖 남대문, 동대문에 활인서를 차렸으나 약재도 변변치 않고 치료효과를 보기 어려웠으며 격리 수용소에 가까웠습니다.
또 혜민서에서도 비용은 공짜였으나 관노와 서리들에게 뇌물을 바쳐야했으며, 약재도 없고, 돈이 있는 사람들은 사설 의원을 더 찾았습니다.
또한 사설의원에서는 갑질을 하거나 진료비가 비싸서 일반 사람들은 가기 어려웠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전염병을 관리하기 힘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