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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얀굴뚝새243
뽀얀굴뚝새24323.08.23

고려시대 신분제도에 대한 질문입니다.

고려시대에는 신분제사회였다고 배운 바 있습니다.

어느 집안에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신분이 결정되는

운명이라서 한번 노비면 노비로 아니면 양인으로

살았다고 하는데,


계층별 명칭은 어떻게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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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조사를 해본 결과 고려시대의 신분제는 크게 양인노비로 나뉘었습니다.

    • 양인은 자유민을 뜻합니다. 양인은 농업, 상업, 공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었으며, 재산을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양인은 국가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 노비는 주인에게 종속된 신분을 뜻합니다. 노비는 주인의 재산으로 간주되었으며, 주인의 허락 없이는 자유롭게 이동하거나 결혼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노비는 주인의 신분에 따라 자유노비와 천민으로 구분되었습니다.

    양인과 노비의 구분은 출신에 따라 결정되었습니다. 양인은 양반, 중인, 상민, 천민 등 다양한 계층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양반은 관직에 오를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있었으며, 중인은 관직에 오르지 못했지만, 양반과 같은 권리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상민은 농업, 상업, 공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었지만, 양반과 같은 권리를 누릴 수 없었습니다. 천민은 노비와 같은 신분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참고 하셔서 도움되셨다면 추천 좋아요 부탁드려요~ 좋은 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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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시대 사회 신분은 귀족, 중류층, 양인, 천민 네가지 유형으로 나뉩니다.

    귀족세력은 왕족과 5품 이상의 고위 관직자로, 왕족 다음 서열이라고 할수있는 문벌귀족들은 주로 개경에 거주하는 5품 이상의 문무 고위관직자를 뜻합니다.

    또 개경에 문벌귀족들이 있었다면 지방에는 향리 라는 호족이 있었습니다.

    중류층은 주로 하급관리들로 이루어져있고 서리, 남반, 향이, 하급 장교 등이 중류층에 해당되었습니다.

    양인은 농업이나 상공업에 총사하는 평민, 최하층 신분인 천민과 노비가 있었습니다.

    고려의 천민은 천한 일을 한다고 하여 차별을 받았던 계층으로 이들의 이름에는 특별히 척 이라는 접미사가 붙었으며 공노비는 궁중이나 관청에서 잡역에 종사, 사노비는 개인이나 사원에 속해있는 노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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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8.23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의 사회체제는 나말여초의 사회변동 속에서 골품제를 기반으로 한 신라의 지배체제가 붕괴된 위에 새로운 지배질서가 요구되는 가운데 성립되었다. 즉 신라 하대 골품제에 반대한 민의항쟁의 성과물이라고 할 수 있으며, 따라서 이전의 사회보다 더욱 개방적인 사회체제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개국공신이나 호족으로 중앙관료화한 부류들이 문벌을 이루며 특권적 지배신분층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 지배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엄격한 신분제도가 성립되었다. 고려의 신분제도는 나말여초의 다양한 계층들을 어떻게 국가의 지배질서 안에 편제할 것인가의 문제에 지배층의 요구가 반영되면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고려의 사회신분은 상급 지배신분층을 구성한 양반·귀족과 하급 지배신분으로서 중간계층이라고 할 수 있는 향리·서리·남반·군인 등이 지배층을 형성하고, 백정농민·상인·공장(工匠)과 향·부곡·소민, 그리고 노비나 화척·재인 등의 천민이 피지배신분층을 이루고 있었다. 양반·귀족은 중앙의 고위관직을 독차지하며 전시과의 과전 및 공음전시를 지급받아 경제적 혜택을 누리고 있었던 특권계급 이었다. 중간계층은 나말여초의 군소호족(群小豪族)과 연결되거나 공동체에서 부유한 계층에 속한 사람들로서, 국가에서는 이들을 정호(丁戶)로 편제하여 향역이나 군역을 부담시키며 외역전·군인전 등의 토지를 지급했다.


    한편 고려왕조는 민(民)들을 공동체 단위로 파악하여 수취체계에 편입시켰는데, 일반 주·군·현에 편입된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백정농민으로 농업에 종사하면서 일정한 조세(租稅)·공부(貢賦)·역역(力役)을 부과했으나, 반왕조적 집단 등은 향·부곡 등으로 편제하여 부가적으로 특정 역을 부과하여 이곳 주민들은 신분적으로는 양인이지만 천시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공동체 구성원들은 적(籍)에 올려져 국가에서 부과하는 의무를 이행하고 있었으나, 여진의 포로나 귀화인 등 떠돌아다니면서 천업에 종사하던 무리라든가 노비와 같이 국가나 개인의 소유물로 되어 국가에서 역을 부과하지 않는 계층은 천인이라 하여 일반 양인과 구분했다. 이러한 고려의 신분제도는 중기 이후 전시과 체제가 무너지면서 동요되다가 무신정변을 계기로 붕괴되었다.

    출처 : 한국고중세사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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