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기 중기에는 어떤 특징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한국사에서 구석기 중기 시기에는 어떠한 특징이 있었나요?
구석기 중기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유물이나 증거자료는
뭐가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정타격면을 가진 몸돌과 박편기법이 등장하고 다양한 형태의 박편석기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시기로, 클라크의 구분으로는 ‘모드 3’에 해당된다. 이 시기에는 사냥기법이 상당히 발달되었다는 것을 도구나 공반되는 동물뼈들에 의해서 알 수 있다. 그리고 동굴 또는 바위그늘 유적 그리고 노천주거지를 반복하여 사용한 흔적들이 있으며 상징적인 표현과 매장 등의 의식적인 행위가 처음으로 나타나는 시기이다.
19세기 유럽에서는 구석기시대를 동굴시대(후기구석기시대)와 동굴이전시대(전기구석기시대)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프랑스의 돌도뉴 지방의 무스띠에 동굴의 유물을 토대로 라르떼는 중기구석기, 또는 ‘동굴곰과 매머드의 시대’를 설정하였다. 현재는 유럽과 중근동 지방에서는 이 시기를 무스테리안 석기공작으로 부르고 있고, 아프리카와 인디아에서는 중기석기시대라고 부르고 있으며, 구대륙의 대다수 지역에서 유사한 석기문화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기구석기는 흔히 마지막 빙기의 초기(약 10만년 전)에 시작되어 약 4만년 전까지 지속된 것으로 본다. 일부 지역, 특히 아프리카에서는 이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시작된 지역도 있으며, 어떤 지역에서는 약 2만년 전까지 지속되기도 한다.유럽에서는 대부분의 중기구석기문화를 ‘무스테리안문화’라고 하는데, 남부 독일에는 나뭇잎모양의 첨두기를 만든 박편석기공작인 ‘알트무흐리안’석기공작이 존재하며, 또한 중부와 서부 유럽에는 작고 뾰족한 끝을 가진 주먹도끼를 반출하는 ‘미꼬끼안’석기공작이 있다. 무스테리안이라는 용어는 프랑스 돌도뉴 지방의 무스띠에 유적에서 따온 말이다. 이 석기공작은 르발르와기법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원반형 몸돌과 함께 옆날긁개, 손잡이칼, 주먹도끼, 톱날석기 그리고 첨두기 등의 다양한 박편석기가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무스테리안 공작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약 80000년 전~35000년 전이다. F.보르드 교수는 무스테리안석기공작을 르발르와기법의 유무 그리고 63가지의 박편석기 비율과 21가지 종류의 주먹도끼 비율을 기준으로, 프랑스의 무스테리안문화를 샤렌띠안, 전형적인 톱날석기 위주의 무스테리안, 그리고 아슐리안전통의 무스테리안 석기공작 등의 4가지 주요한 문화유형으로 구분하였다. 이러한 석기공작의 유형을 보르드는 양식적인 차이이거나 인간집단의 차이로 해석하였으나 미국의 L.빈포드 교수는 행위의 차이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전반적으로 볼 때, 유럽의 중기구석기 유적 중에서 마지막 간빙기에 속하는 것은 아직 없으며 몇몇 석기공작이 열형광법에 의해 마지막 빙하기의 시작무렵(산소동위원소 제5단계; 약 10만년 전)으로 알려진 것들이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유럽의 중기구석기공작은 산소동위원소시기 4~3단계, 즉 75000년 전에서 34000년 전 사이의 시기에 해당된다.아시아에서는 특히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중근동지방에서는 르반트지방의 동굴 유적에서 중기구석기시대의 석기 공작이 확인되었는데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야브루드, 타분 그리고 크사르 아킬 등이 있다. 이라크에서는 샤니다르 동굴유적이 있고 우즈베키스탄에서는 테쉭 타쉬 유적이 있는데 여기서는 네안데르탈 인골이 발견되었다.
이러한 인골들은 아마도 매장된 것으로 보여진다. 이 지역은 북아프리카 지방과 마찬가지로 유럽과 공통의 문화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석기공작들은 유럽과 마찬가지로 대략 11만년 전에서 약 4만년 전 사이의 시기에 해당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도의 중기구석기는 대부분 강퇴적층에서 발견되는데 연대추정이 어렵다. 원반형의 조정타격면 몸돌은 형식적으로 유럽의 것과는 차이가 있으며 아프리카의 중기구석기문화와 비견된다. 중국에서는 전기의 석기공작기법들이 그대로 지속되며 석기의 형태에 있어서도 소위 대형첨상기 전통이 지속되고 있다. 이 지역에는 조정타격에 의한 석기제작은 별로 확인되지 않아서 석기제작기법이 전기구석기공작과 확연히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이 시기에 중국에서 발견된 고인류화석들, 예를 들어 大溪人이나 金牛山人들은 호모 사피엔스이지만 네안데르탈인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는 일부 고인류학자들은 중국지역에서 이 시기동안 지역적으로 고립된 상태로 체질적인 측면과 문화적인 측면에서 발전이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중기구석기의 시대구분이 서구의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중국학자들은 석기공작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기 때문에 고동물편년을 이용하여 중기구석기를 설정하고 있다. 신생대 3기의 동물이 적게 남아있고 새로이 상부홍적세의 동물이 대거 출현하는 시기의 유적에서 발견되는 석기를 이 시기에 포함시키고 있다. 그래서 유적의 연대 범위는 20만년 전에서부터 4만년 전까지이다. 대표적인 유적으로 丁村 유적, 大溪 유적, 許家窯 유적 그리고 북경 周口店 15지점 등이 이시기에 포함되어 있다.
한반도에서 중기구석기라고 주장되는 석기공작으로는 굴포리 하층, 석장리 중층, 용곡동 중층, 명오리, 상무룡리 하층 석기공작 등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석기공작은 중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석기공작기법 상으로는 전기와 비교해 볼 때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단지 이러한 석기공작이 돌날석기로 대표되는 후기구석기공작 이전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 중기에 포함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석기공작의 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아무런 증거가 아직 확보되지 않아서 그 연대 범위를 설정하기가 어렵다.
아프리카지역도 유럽의 중기구석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물론 북부지역의 르발루와 무스테리안문화가 있지만, 이 지역에서조차 아테리안 유경식 석기가 나타나고 나뭇잎 모양으로 생긴 첨두기가 나타난다. 이러한 것들은 아프리카 문화전통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그리고 중부 아프리카에서는 룸펨반석기공작이 나타나고 있다. 일반적으로 아프리카는 유럽과는 다르게 지역적인 특성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다양한 환경에서 오는 것으로 생각된다. 아프리카지역에서는 중기구석기시대에 이미 돌날석기공작이 나타나고 빅토리아 웨스트 기법이라고 하는 조정타격법,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양면가공기법이 나타나고 있는 점들이 다른 지역의 중기구석기시대와 비교된다. 아프리카에서 중기구석기시대의 시작은 약 15만년 전으로 올라간다. 남아프리카의 클라시에스 리버 마우스 유적의 연대는 20만년 전에서 12만년 전에 해당한다.
중기구석기인들은 대형 초식성동물을 사냥한 흔적을 많이 남기고 있다. 바위그늘이나 야외 유적을 주기적으로 혹은 장기간 점유하면서 창이나 나무창을 이용하여 사냥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돌창끝이 매머드와 함께 발굴된 예가 영국의 헌스로우 유적이나 독일의 레링겐 유적에서 발견된다. 사냥 기법도 다양해진 것을 알 수 있는데 프랑스의 호르투스 유적에서는 이벡스를 절벽으로 몰이하여 대규모 사냥을 한 흔적이 있으며 보츠와나에서도 얼룩말을 몰이한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다. 나일강 유역의 코르무사 유적에서는 이미 이 시기에 물고기를 잡은 증거가 발견되며 또한 남아프리카의 클라시에스 리버 마우스 유적에서는 이미 조개채집이 이루어진 흔적이 보인다. 새를 잡은 흔적들은 여러 유적에서 확인되고 있고, 또한 갈돌을 이용하여 식물을 가공한 흔적들도 이미 중기구석기에 나타나고 있다.
이 시기에 이미 장거리 운반된 유물이 유적에서 확인되고 있다. 특히 남아프리카 보도 동굴유적에서 발견된 조개는 약 400㎞ 떨어진 곳에서 운반된 것이다. 상징과 의식에 대한 증거들도 나타나고 있는데 네안데르탈인의 매장은 대표적인 것이다. 분명히 구덩이를 파고 무덤을 만들었는데 곰 머리(리고르두 유적)나 양 머리(테쉭 타쉬 유적)를 다른 부장품과 함께 묻었던 흔적이 남아있다. 리고르두 유적의 경우에는 도구와 함께 고기덩어리를 부장하였다. 일반적으로 중기구석기에 동굴곰 머리에 대한 신앙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다수 발견되고 있다. 남아프리카에서는 중기구석기에 이미 광물성 물감을 이용한 채색벽화가 동굴(아폴로-11)이나 암벽에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스와질란드에서는 이러한 물감을 획득하기 위한 헤마타이트 광산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이외에도 조각품 등의 예술품도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미 이 시기에 상당한 수준의 현대적 의미의 인간성 발현 흔적이 유적에서 보여지며, 또한 발달된 언어의 사용이 체질인류학적인 증거로 나타나고 있다.[네이버 지식백과] 중기구석기시대 [中期舊石器時代] (고고학사전, 2001. 12.)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기 구석기 시대는 보통 무스테리안공작의 등장과 더불어 시작한다고 알려져있고 이 공작은 르발루아기법이라 불리는 고도의 정제된 박편가공기술을 응용해 석기를 제작한 것이 가장 중요한 특징입니다.
그러나 무스테리안 공작은 전기 아슐리안공작과 같이 모든 곳에서 발견되는 것은 아니며 아시아에서는 아주 제한된 지역에서만 그 존재가 알려졌습니다.
이 시대의 담당자는 네안데르탈인을 비롯한 여러 호모사피엔스 집단으로 생각되며 이들의 석기공장이 기본적으로 전시대의것을 계승, 발전한 것이지만 전반적으로 훨씬 더 정교하고 세력된 석기가 만들어졌으며 이시기 사체의 매장풍습이 인류 역사상 최초로 등장하며 원시적인 형태의 종교와 예술 행위의 증거도 발견되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구석기 중기는 초기 인간의 생활과 문화 형성 단계로, 대한민국에서는 주로 기원전 5000년부터 3000년 경까지를 가리킵니다. 이 시기
에는 농경과 축산의 시작, 도구의 진화, 토기의 등장, 종교와 예술의 발달 등의 특징이 나타났습니다. 인간들은 작은 규모의 농작과 가축
을 기르면서 정착 생활을 시작하였고, 돌, 나무, 뼈 등을 이용하여 도구를 제작하는 기술이 발전했습니다. 토기 제작 기술의 등장으로 식
기와 저장용기가 사용되었으며, 종교적 신앙과 예술 활동도 발달했습니다. 동굴 벽화, 돌기둥, 도자기 등의 예술 작품과 돌기계, 돌칼, 돌
도끼 등의 도구들은 구석기 중기를 잘 보여주는 유물과 증거 자료로서 사용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김보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구석기 중기의 특징으로는 뗀석기가 제일 큰 특징입니다.
모여서 소수가 군락생활을 하였고 채집과 수렵으로 생활하는것이 특징입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구석기 시대 특징
연모 : 돌을 깨트리거나 떼내어 만든 뗀석기를 주로 사용하였습니다.
사는곳: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동굴에서 눈, 비, 추위, 맹수 등을 피하였고, 불을 이용하여 추위를 이겨 내기도 하였습니다.
식량:열매를 따거나 사냥을 했으며, 불로 음식을 익혀 먹었습니다.
유물:여러 뗀석기와 뼈 연모들이 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시대적으로는 12,000년 전 플라이스토세 말기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구석기 중기는 보통 도구의 차이를 보이는데 구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도구는 돌을 깨서 떼어내 떼어낸 격지들을 잔손질 해서 날카롭게 다듬어서 짐승의 가죽을 벗기거나, 사냥을 하거나, 공구 등으로 매우 다양하게 쓰였으며 그 용도에 따라 밀개, 찍개, 주먹되, 뚜르개, 새기개, 긁개 등으로 나뉜다고 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기 구석기유적(굴포리, 석장리, 빌레못동굴, 용곡 1호 동굴, 명오리, 수양개, 상무룡리, 남계리, 병산리)에서는 주로 박편석기인 긁개, 첨기(찌르개), 칼, 끝긁개(밀개), 송곳(뚜르개), 조각칼(새기개), 톱니날, 홈날, 대형석기인 주먹도끼, 박편도끼, 쵸퍼, 쵸핑-툴 등과 르발르와돌핵이 분류되고 있다.
-출처:우리역사넷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반도에서는 르발르와기법이나 이와 유사한 발달된 사전조정박편제작기법이 발견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구석기 전공자들에게 있어서 중기구석기시대로 흔히 구분하는 석기공작들은 시간적으로 마지막 빙하기가 시작된 시점에서 3만 5천년 사이의 석기공작들을 포함합니다. 르발르와기법은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보이지 않고 대체로 내몽골 지역을 그 남방 하한으로 나타나고 있어서 한반도와 중국 남부의 석기공작의 발달에 큰 변화가 보이지 않는 요인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일부 편년에서는 중기를 20만년 전으로 보는 경우도 있지만 이것은 유럽의 르발르와기법의 출현을 토대로 주장되는 것이므로 현재의 동아시아 지역의 석기공작의 패턴으로 보아서는 의미가 없어서 임의의 시간을 전제로 중기를 설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반도에서 중기구석기로 분류되는 석기들은 실제로 전기구석기의 석기들과 구분이 어려운데 일부 학자들은 흔히 후기구석기층 아래에서 후기와 다른 석기공작이 발견되면 중기구석기로 보는 경향이 다분히 있습니다. 이러한 지질층서적인 편년은 많은 유적의 석기공작에 적용되었습니다. 보성 죽내리유적의 하층, 홍천 하화계리유적의 하층, 제천 명오리유적의 하층, 화천 상무룡리유적의 하층, 춘천 거두리와 갈둔유적, 홍천 일대의 여러 지점들, 평양 용곡동유적의 중층, 대전 용호동유적, 이천 삼리유적, 양평 병산리유적의 하층, 천안 두정동유적의 하층 등의 석기공작들이 중기구석기로 편년되었습니다. 이들 석기공작들은 대체로 전기로 분류된 석기공작과 거의 유사한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주먹도끼를 포함한 대형석기들이 특징적이며 제한된 가공으로 기능을 부여한 소형석기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단계의 몸돌과 다각면원구의 존재는 이 시기에도 무가공의 격지를 널리 사용한 전통이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일부 유적들 중에서 퇴적층의 최하부, 즉 암반의 상부에 바로 연속되는 사면붕적기원이나 사태로 인한 자갈층 또는 거친 모래층에서 자연석들과 함께 지형의 곡부에서 집중되어 나타나는 석기공작들이 여러 유적에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특히 파주 운정지구에 있는 다수의 유적들이나 김포 신곡과 장기 등의 유적들이 대표적입니다. 이와 유사한 구조를 보이는 유적들은 금강유역의 송두리유적이나 나주의 당가유적 등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석기공작들을 상부층의 OSL연대나 AMS연대를 토대로 중기구석기로 구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석기공작들의 특성도 크게 다를 바가 없는데 유적의 형성 과정을 고려한다면 실제로 석기공작의 제작과 사용의 시기가 상당히 올라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실제로 운정 지역의 유적들에서는 마모도가 다른 유물들이 포함되어 있어서 이전 시대의 석기들을 재가공하여 사용한 경우들이 관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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