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은 단점이나 실수는 없었나요?
세종대왕은 수많은 업적을 남기고 성군으로 추앙받는데요 그런 대왕님도 단점이나 실수는 없었는지 있다면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세종대왕은 우수한 통치자로 평가되지만, 그 역시도 단점이나 실수가 없었던 인물은 아닙니다.
먼저, 세종대왕은 국왕으로서의 책무를 위해 매우 바쁜 일상을 보냈기 때문에 자녀들을 제대로 돌볼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이로 인해 자녀들 중 일부가 어려운 처지에 처하거나 비극적인 사건을 겪었습니다.
또한, 세종대왕은 조선 시대의 신분제도를 유지하는 한편에도, 관료제를 강화하고, 왕권을 강화하는 등 중앙집권화를 추진했습니다. 이러한 정책은 조선시대 사회의 부당하고 불평등한 면모를 극복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군민들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또한, 세종대왕은 의례와 관련된 일부 정책에 대해 지나친 강제성을 발휘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의궤를 강제로 개방하도록 지시하여 인삼과 같은 소중한 자원이 무분별하게 채취되는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마지막으로, 세종대왕의 식량 관리 정책 중 일부는 기근과 같은 문제를 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흥진전란 때 인양되는 군인들에게 식량을 제공하기 위해 밀과 콩을 대량으로 저장했으나, 이러한 저장 방식은 오랜 기간 동안 보존하기 어렵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군사들이 굶주려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세종대왕도 인간으로서의 한계와 실수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는 학문과 문화, 사회적 평등 등에 대한 지혜와 열정으로 조선시대의 발전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420년(세종 2년)에 만들어진 ‘부민 고소 금지법’은 모반이나 역모를 제외하고는 지역 주민이 관찰사나 수령을 고소할 수 없다는 내용입니다. 이를 어기고 고소한 자는 장 100대, 노역형 3년이라는 중형에 처했다고 하지요. 다른 사람도 아닌 ‘애민 군주’ 세종이 이런 법을 시행했다는 것에 많은 연구자들이 충격을 받습니다. 이 때문에 “이 법은 그저 엄포용이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세종을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법을 그렇게 쓰면 법의 권위와 준법문화가 파괴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고민하던 이가 세종이었지요. 아마도 세종 대왕이 한 일중에 유일하게 옥의 티가 있다면 바로 이 법률의 제정 일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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