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일본 전쟁인 중일전쟁의 직접적인 발발 원인은 무엇이었나요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게 되는데요 중국이 전쟁을 피하려고 했어도 결국은 일어났을 전쟁이라 보여지는데 일본의 대륙진출 야욕 때문에 말입니다 이런 중일전쟁의 직접적인 발발 원인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직접적인 원인은 노구교 사건입니다.
1937년 7월 7일 북경 서남 교외의 노구교 근처에서 몇발의 총성이 울리는데 일본군은 근처에서 야간연습을 하고 있었고 발포가 어느쪽에서 이루어졌는지 불분명하지만 일본은 이 총격을 일본에 대한 중국의 도발행위로 간주하고 즉각 보복공격을 퍼부었으며 일본정부는 중국정부에게 사죄 및 발포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습니다.
이 요구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대규모의 군대를 동원하겠다는 협박까지 했습니다.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는 이 조선을 들어줄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고 노구교 사건 이후 몇 차례의 충돌이 있었지만 현지에서는 정전협정이 체결되나 일본은 내각회의를 열어 이 사건을 중국이 계획적으로 일본에 무력 대항한 것으로 단정하고 중대결정을 했다는 발표를 했는데 이 중대결정이 전쟁이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루거우차오 사건으로 시작된 중일전쟁은 초기 일본 제국군의 공세로 중국군이 밀리는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중국은 화북 지방을 상실하고 상하이 전투에서 대패한 뒤 수도인 난징까지 함락되며 수세에 밀렸다. 1938년 황허 홍수를 통해 일본군의 진군을 저지하려 시도했으나 이는 실패하고 수많은 중국인이 사망하거나 난민이 되었다.
전쟁이 시작된 1937년부터 1941년까지는 이렇게 중화민국 홀로 일본 제국과 격렬한 전쟁을 하는 양상이 이어졌으나, 전쟁이 장기화되자 일본 제국이 진주만 공습을 행하면서 중일전쟁은 제2차 세계 대전에 포함되었다. 이후 일본 제국이 서방 연합국과의 전투에서 패착을 거듭하면서 일본군의 전력은 급속도로 쇠퇴했으며, 1944년 즈음에 일본은 대륙타통작전을 개시하면서 반격을 꾀했으나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출처:나무위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일전쟁은 이른바 노구교 사건으로 시작되었습니다. 1937년 7월 7일 북경 서남 교외의 노구교, 일명 마르코폴로 브릿지 근처에서 몇 발의 총성이 울렸습니다. 일본군은 근처에서 야간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발포가 어느 쪽에서 이루어졌는지 불분명했지만 일본은 이 총격을 일본에 대한 중국의 도발행위로 간주하고 즉각 보복공격을 퍼부었으며 일본정부는 중국정부에게 사죄 및 발포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습니다.
만일 이 요구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대규모의 군대를 동원하겠다는 협박까지 서슴지 않았습니다.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는 이 조건을 들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노구교 사건 이후 몇 차례의 충돌이 있었지만 현지에서는 정전협정이 체결되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내각회의를 열어 이 사건을 중국이 계획적으로 일본에 무력 대항한 것으로 단정하고 중대결정을 했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그 중대결정이라는 것은 곧 전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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