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할아버지는 지돈녕부사 박필균(朴弼均)이며 아버지는 박사유(朴師愈)이며 박지원의 가문은 소론의 명문가였지만 박지원이 자랄 때는 재산이 변변치 못해 100냥도 안 되는 밭과 한양의 30냥짜리 집 한 채가 있었을 뿐이었다고 전해 집니다. 박지원은 영조로부터 신임을 받으면서도 외척이라는 혐의를 피하고자 애썼으며 청렴했던 할아버지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며 성장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박지원은 임진 병자 양란을 겪으면서, 새로운 상공업의 발달로 인한 평민의식의 성장과 이에 따른 조선 전기의 엄격한 신분 질서가 붕괴하던 조선 후기의 실학자가 되였으며 철저한 유교적 신분 질서의 와해는 급기야 유교적 질서의 붕괴를 가져오고, 시민 정신의 발아라는 근대정신으로의 사고의 전환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양반 관료층은 고리타분한 구시대의 명분에 집착하여 변화를 거부하면서도 전통 양반으로서의 자질을 잃고 있었고 양반전은 이와 같은 조선 후기 사대부의 비합리적인 사고를 비판하고 풍자함으로써 이 시대의 이상적인 선비형을 제시하고자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