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그녀가 자신의 대관식 반지를 들어보이면서, "짐은 이미 잉글랜드를 남편으로 섬기고 있노라."고 말했다고도 합니다.
그만큼 나라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실제로 그녀는 죽을 때까지 한 번도 결혼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국민들이 붙여준 별명은 버진 퀸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한 나라의 여왕에게 결혼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사실상 그녀의 결혼은 문제가 많았습니다. 신교 국가인 북유럽을 포함해서 그녀 자신과 비슷한 신분을 지닌 외국의 왕족은 대부분 가톨릭 교도였기에, 이들 중에서 남편을 택할 경우 잉글랜드 국교회가 흔들릴 것이며 외세의 간섭 또한 심해질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메리 1세가 잉글랜드인들에게 인기를 잃은 이유 중 하나는 이 때문이었습니다. 자국의 신하와 결혼하는 것도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음이 명백했습니다.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가 명백한 예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시의 관념상 여성이, 그것도 한 나라의 여왕이 결혼하지 않고 후사를 갖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결혼은 두고 두고 문젯거리가 되었습니다.
프랑스와 에스파냐 등 외세로 둘러싸인 잉글랜드에서 미혼이라는 그녀의 신분이 가장 큰 자산이었기에 결혼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혼담 진행 과정을 보면 혼담이 들어올 때마다 대부분 반가워하며, 진지하게 결혼을 생각하는 모습을 보이다, 진전이 이뤄지면 상대가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내걸어 파혼이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