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홍문관의 기능은 무엇입니까
조선왕조시대 홍문관이라는 기관이 있었는데 이 홍문관의 기능과 역할은 무엇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또 홍보관이 처음 세워진 것은 어느 시기인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홍문관(弘文館)은 조선 시대 조정의 문서 관리 및 처리와 더불어 국왕의 각종 자문에 응하는 업무를 맡았던 중앙 관서이다. 집현전의 후신으로 옥당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렸으며, 사헌부·사간원과 더불어 삼사(三司)라 하였다.
홍문관의 역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성격상 중서문하성의 낭사(郎舍)직 중 자문 역할을 담당하던 보궐(補闕), 습유(拾遺)의 역할이 분리되어 서적 보관을 담당하던 비서성(秘書省)과 결합한 기관으로 볼 수 있다.
선대의 역사를 바탕으로 대의명분을 따지는 경향이 컸던 유교가 삼국시대 무렵 한반도로 전해진 이후 각종 서적의 관리 및 고문 역할을 하는 기구는 모든 왕조마다 존재해왔다. 홍문관이라는 명칭이 처음 쓰인 것은 고려 성종 때의 일이지만, 고려 시기에는 폐지했다 신설했다 하는 변동이 잦았다. 일반적인 시각으로는 세종대왕이 집현전에 많은 힘을 실어주고 각종 연구를 진행한 것을 홍문관의 시초라고 본다. 하지만 이 집현전의 젊은 관료들이 세조의 왕위 찬탈에 반발하여 모반에 가담하였다가 일망타진당하는 일이 발생했고, 이에 세조는 집현전을 철폐하고 예문관에게 집현전의 업무를 맡긴다.
한편 세조는 비슷한 시기에 문서 보관 기관을 신설하는데, 이 기관의 이름이 바로 홍문관. 그렇지만 이때의 홍문관은 말 그대로 순수한 문서 보관 서 정도의 업무를 처리하였을 뿐이었다. 홍문관에게 다시 학술 및 국왕 자문 기구로의 역할을 부여한 것은 바로 손자 성종. 성종은 훈구를 견제하기 위한 목적하에 의도적으로 사림을 언론 기관 쪽에 등용하였고, 언론 기관 중에 하나였던 홍문관은 그 위세가 급성장하게 된다. 주요 업무인 자문 응답, 학술 활동 외에도 홍문관은 국왕이 그릇된 일을 한다고 여겨질 경우 간쟁에도 참여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조선 시기 내내 홍문관의 관료들은 청요직 중에서도 가장 본좌로 여겨졌다. 아예 성종의 치세 이후로 각종 판서나 정승 중에서 홍문관 관료를 안 지내고 그 자리에 오른 사람을 찾는 게 하늘에 별따기일 정도. 이렇게 수백 년 동안 막강한 위세를 자랑했던 홍문관은 순종 1년에 폐지되게 된다.
오늘날로 치면 국가기록원 및 대통령 직속의 국가교육위원회와 꽤 비슷한 면이 있다.출처: 나무위키 홍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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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자문에 응하는 업무를 맡았던 중앙기관입니다. 집현전의 후신으로 세워진 기관입니다.
세조 때부터 홍문관이 등장하다가,
홍문관이 학술 및 국왕 자문 기구로서 역할을 한 것은 성종 때부터입니다.
안녕하세요. 이병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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