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선 50여 척이 비인현의 도두음곶(都豆音串)에 침입해 병선을 불태우고 약탈하며, 절제사 이사검(李思儉)을 해주 · 연평곶(延平串)에서 포위하는 등 침입이 잦았다. 이에 조정에서는 적의 허점을 틈타 왜구의 소굴인 대마도(對馬島)를 공격하기로 결정하고, 그에게 전함 227척, 군량 65일분, 군졸 1만7285명을 거느리고 대마도를 정벌하도록 하였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왜구는 13세기부터 16세기에 걸쳐 한반도와 중국 연안에서 활동한 일본인의 해적 집단을 총칭하는 것으로서, 여말선초 약 70년간 우리 나라 연안 각지에 침입하였다고 합니다. 특히 고려 말의 약 40년간은 왜구가 창궐해 피해가 극심하였고 이에 고려는 사절 파견, 성보(城堡) 수축, 수군 증강, 화기 개발 등의 왜구의 근절책을 세웠으나 끝내 성공하지 못하였다고 합니다.조선이 건국 되면서 유화책을 써도 왜구의 침입이 계속되자 세종 대왕은 그들의 근거지인 대마도를 이종무 장군등을 통해 정벌하게 된 것 입니다.
세종이 즉위한지 얼마안되어 일어난 일이 바로 3차 대마도 정벌입니다. 고려말 왜구의 침입에 박위가 1차 정벌, 태조 때 2차 정벌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세종 대 3차정벌입니다. 이는 대마도주가 바뀌면서 기근이 일어난 탓에 왜구의 침입이 발생했고 이에 대마도주가 관련이 있다고 보고 대응해 정벌이 일어난 것입니다. 기해동정이라하는데 출정식에 상왕 태종과 세종대왕이 연회를 베풀어 기를 높이었습니다.
큰 군사적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대마도주가 신하로서 복속하기를 청하고 항복하니 이에 수락했고 이에 따라 삼포 개항 시 통상의 권한을 주었습니다. 이렇게 평화적 교역이 이루어지자 왜구의 침입과 약탈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