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사보면6.25전쟁때 중국이 참전했던 배경이 있나요?
근대사보면 6.25전쟁때 중국이 한국전쟁에 참전하게된 계기가 있었는지가 궁금합니다.
혹시 아시는 전문가님 계시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공은 6.25전쟁 발발 10여일 후인 7월 7일 동북변방군을 편성해 25만명의 병력을 배치했습니다. 압록강을 넘는 파병은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베이징지도부내 반대가 많았고 스탈린이 항공지원을 해줄지도 의문이었기 때문입니다. 1일 김일성 편지와 스탈린의 전문을 받은 마오는 이튿날 중국 공산당 정치국 확대회의를 개최합니다. 마오는 참전을 찬성했으나 대부분의 정치국 위원들은 반대해 마오는 모스크바에 당분간 참전할 수 없다고 보냅니다. 하지만 저우린이언 총리는 주중 인도대사를 통해 미국이 38선을 넘으면 참전할 수 있음을 알립니다. 파병의지가 강했던 마오는 펑더화이를 사령관으로 임명했고 펑더화이는 미국은 호랑이다. 결국 사람을 잡아먹을 것이다. 언제가 잡으려고 한다는 빨리 잡는 것이 좋다라고 하며 파병을 주장합니다. 이에 마오는 출병준비를 명하고 스탈린에게 공군을 지원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스탈린은 공군 지원은 2개월 뒤에나 가능하다는 답을 보내오자 마오는 분노합니다. 어쩔 수없이 소련의 공군의 도움없이 마오는 공격을 명합니다. 이는 북한이 미군에 밀려 동북망명정부를 만들면 소련이 동북에 들어오는 시나리오가 마오에게는 견딜 수없는 고통이었기에 북한이 더 밀리기 전에 참전을 결정한ㅇ것입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크게 세 가지 이유가있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항일전쟁은 물론이고 장개석과의 전쟁에서 크게 기여해 준 북한 지도층에 대한 감사 차원이었고 가장 중요한 이유는 미국의 롤벡 정책으로부터 중국본토를 지킬 필요성이란 부분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이유는 한반도에 대한 전통적인 자국의 영향력을 소련으로부터 빼앗아야 할 것이란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한반도 전쟁을 통해 중국본토로 미군이 진입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세력이 미국 내부에 적지 않았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었으며 소위 말해 미국의 롤백 정책과 관련이 있었던 것입니다. 어짜피 중국 대륙에서 미군과 싸워야 할 상황이라면 한반도에서 싸우는 것이 보다 바람직할 것이란 모택동의 인식 때문이었던 것이었던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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