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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찬하늘소17723.07.26

신사임당의 주요 업적과 생애가 궁금합니다.

한국조폐공사에서 발행하는 5만원권의 주인공으로도 유명한 신사임당은 또한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도 알려져있습니다.


신사임당의 주요 업적과 생애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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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원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사임당

    조선 중기의 시인이자 화가. 호는 '사임(師任)'으로 13살 때 주문왕의 어머니인 태임(太任)을 자신의 롤모델로 삼겠다는 뜻으로 직접 지은 것이다. 후대에 여자임을 뚜렷이 알기 쉽게 하도록 안주인이 기거하는 별채라는 뜻의 '당(堂)'을 붙여서 '사임당'이라 부르다보니 통칭이 이렇게 고정되어 버렸는데 생전에는 '사임 신씨'였을 것이다. 아무 근거없이 이름이 '신인선' 또는 '신선'이라고 많이 알려져 있지만 이름이 나와 있는 문헌은 없는데 1990년대 위인전 출판사가 작명한 것으로 추측된다. 신사임당의 이름이 언급된 문헌은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그녀의 정확한 성명은 현재까지도 불명이다. 현대로 치면 '신 모 씨'지만 호가 있기에 이렇게라도 전해질 수 있는 것이다.

    시, 서, 화는 물론 학문에도 능했던 엄친딸의 표본. 괜히 슬하에서 이이 같은 사람이 나온게 아니며 신사임당 당대에는 '안견에 버금가는 화가'라는 높은 평가를 받을 정도로 예술가로서 뛰어난 명성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녀의 업적이나 여러 가지로 상당히 앞서나갔던 여성이라는 면모는 많이 무시되고 현모양처라는 이미지나 '이이의 어머니'라는 명칭이 유명하여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 물론 현모양처라는 단어 자체나 이이의 어머니라는 점은 절대로 모욕이 아니지만 그녀 개인의 역량이 묻혀버린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아시다시피 율곡 이이의 어머니가 신사임당이고 평산 신씨 문희공파이며 오만원권 지폐의 모델이다.

    자료출처 : 나무위키 - 신사임당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초기 활동안 여성 서화가로, 호는 사임당, 시임당, 임사재이고 본관은 평산입니다. 강원도 강릉 북평촌에서 신명화와 용인이씨 사이에서 5자매 중 둘째로 태어났으며 부친은 41세에 진사에 올랐으나 조광조의 지치주의 실현에 뜻을 같이 해 1519년 기묘사화 이후 관계를 떠나 학문에 뜻을 두었습니다.

    무남독녀로 외조부의 사랑을 독차지한 모친의 영향으로 학문에 상당한 조예를 이루었고 1522년 덕수이씨 이원수와 결혼해 4남 3녀의 7남매를 낳았습니다.

    부군인 이원수는 50세가 되어서야 종5품 벼슬인 수운판관을 시작으로 내섬시, 종부시, 주부에 이어 사헌부 감찰을 역임, 사임당은 엄격함과 자애로움, 당당함을 겸비한 주부로 집안 대도사에 소홀함이 없었고 남편은 서울에서 홀로된 모친 홍씨를 , 신사임당은 강릉에서 친정어머니를 모셨기에 이들 부부는 근 20년이나 떨어져 살았습니다.

    셋째 아들이 조선 성리학의 거유 이이이며 맏딸 매창과 넷째아들로 막내인 이우가 그림으로 이름을 남겼으며 신씨는 현모양처의 표상이자 교육의 사표이며 변함없는 존경의 대상으로 알려졌는데, 여러 명사제현들의 문헌에 서화가로서의 명성이 거론됩니다.

    전래작이 많음은 서화의 전래가 드문 조선전기로서는 의외의 사항이라 하겠으나 이들 대부분은 전칭작을 면하기 어려우며 사임당은 산수, 영모, 묵초도, 초충 등 다양한 소재의 그림 뿐 아니라 시문에도 능했으며 글씨도 잘 썼습니다.

    7세때부터 조선 초 최대 거장으로 근 백년 앞선 안견의 그림을 보고 산수도를 그렸다는 아들 율곡 이이의 증언과 산수화에 뛰어났다는 문헌기록이 있으나 이 화목의 전래작은 몹시 드물며, 산수화로는 율곡 이이 증손가에 있는 산수도 8폭과 금강산도, 1985년 문화재관리국으로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 이관된 병풍에 있는 산수도 2점 등 11점이 알려져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병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사임당은 아들 없는 집안의 다섯 딸 중 둘째 딸로 태어나 시와 서예, 그림에 남다른 재능이 있었으며,

    산수도를 잘 그린 화가로서 명성이 자자했습니다.

    율곡이 유학자들의 존경의 대상이 되자 사임당은 천재화가 보다는 율곡을 낳은 어머니로 칭송받기 시작했습니다.

    사임당에 대한 유학자들의 존경은 18세기 유학적 가치가 정점에 이른 시기에 마침내

    그녀는 부덕과 모성의 상징으로 변화해 갔습니다.

    사임당의 일생을 돌아보면 현모양처 이전에 화가로서 그리고 효녀로서 훌륭한 여성이었지만

    자신의 일생보다 아내로서, 어머니로서의 삶이 더 부각되었습니다.

    남편 이원수가 첩살림을 하면서 부부관계가 소원해지기도 했습니다.

    작품으로는 산수도, 초충도, 연로도, 자리도, 노안도, 요안조압도와 6폭 초서병풍이 대표작입니다.

    5만 원권 지폐에 인물로 올라 있지만 현모양처의 이데올로기는

    일본 식민통치의 잔재라며 화폐인물 선정에서 반대도 있었습니다.

    생애는 1504~1551년, 4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시대 중기의 문인이자 유학자, 화가, 작가, 시인이다. 조선시대 중기의 성리학자 겸 정치인 율곡 이이, 화가 이매창의 어머니 입니다. 여성이 사회 활동을 하기가 쉽지 않았던 우리 조선 시대에 훌륭한 어머니 이자 화가, 시안 이였던 분입니다. 강원도 강릉 출신으로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본명은 신인선(申仁善)이라고도 하나 확실하지 않으며 사임당은 그의 당호(堂號)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