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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평책은 조선 영조 때 붕당 간의 다툼을 완화하기 위해 등장한 불편부당의 정책으로 조선 중기인 선조, 광해군 시기 정계에 진출한 사림은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졌고 동인은 남인과 북인으로 나뉩니다. 조선 후기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나뉘고 정조 초 시파와 벽파로 나뉘게 됩니다.
조선시대 숙종이 탕평책을 처음 시행하고자 하나 여의치 않아 환국이 자주 발생, 신임옥사의 와중에서 왕위에 올라 당쟁의 폐단을 느낀 영조는 1724년 즉위해 당쟁의 폐단을 지적하고 탕평의 필요를 역설하는 교서를 내려 탕평정책의 의지를 밝혔습니다.
1730년 그의 옹립에 공이 컸던 노론의 강경파 영수 민진원과 소론의 거두 이광좌를 불러 양파의 화목을 권하는 한편 그의 시책에 호응하지 않는 호조참의 이병태, 설러 유최기 등을 파면, 노론의 홍치중을 영의정, 소론의 조문명을 우의정에 임명해 당파를 초월해 인재를 등용하고 일반 유생들의 당론에 관련된 상소를 금지, 1742년 성균관 입구에 탕평비를 세우는 등 당쟁의 해소에 노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