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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훈한두꺼비124
훈훈한두꺼비12423.04.09

무궁화가 우리나라의 국화가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무궁화는 삼천리 강산의 우리나라 꽃이라는 노래 가서처럼 우리나라의 국화인데요, 무궁화는 언제 우리나라의 국화가 되었고 국화가 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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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10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4.09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한국의 국화인 무궁화는 목근화라고도 부릅니다. 무궁화는 꽃이 피고 지는 것이 끝이 없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국화인 무궁화는 옛날부터 한반도 전역에 널리 분포되어 있었으며 꽃이 아름답고 꽃피는 기간이 길어 우리 민족의 오랜 사랑을 받아 왔습니다. 그리하여 한국을 근역 곧 무궁화의 나라로 일컫게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은 더욱 무궁화를 국기처럼 소중히 생각하고 민족의 꽃, 나라의 꽃으로 누구나 믿게 되었으며, 1945년 광복 후에는 국기가 법으로 제정되면서 국기봉을 무궁화 꽃봉오리로 정하였고, 정부와 국회의 표장도 무궁화 도안으로 널리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무궁화가 국화로 지정된 유래에 대해 무궁화는 구한말부터 우리나라 국화로 인식되었는데 국가나 일개인이 정한 것이 아니라 국민 대다수에 의하여 자연발생적으로 그렇게 된 것으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를 옛부터 근역(槿域, 무궁화가 많아 근역이라고 불림) 또는 무궁화 삼천리라 한 것으로 보아 선인들도 무궁화를 몹시 사랑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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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수희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무궁화의 'syriacus'라는 종명은 '시리아 원산'이라는 뜻이지만, 학계에서는 원산지가 시리아라는 것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으며 인도와 중국이라는 설을 가장 유력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에서 자생지가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옛 문헌에 의하면 오래전부터 널리 심었던 것은 분명하다. 최근에 중국의 후난성[湖南省]·푸젠 성[福建省] 및 광시좡족 자치구[廣西壯族自治區] 일대에 널리 자생하고 있는 것이 밝혀졌다. 한반도에서 무궁화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중국의 〈산해경 山海經〉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이 책은 상고시대의 지리·풍속을 널리 조사해 기록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책의 제9권 해외동경(海外東經)에 ""군자의 나라가 북방에 있는데…… 무궁화가 아침에 피고 저녁에는 시든다""(君子之國在其北……有薰花草 朝生募死)라는 구절이 있다. 군자국은 한반도라는 것이 밝혀졌고, 훈화초는 무궁화를 일컫는 중국의 옛 이름이다. 또한 중국의 〈고금주 古今注〉에는 ""군자의 나라는 지방이 천리나 되는데 무궁화가 많더라""(君子之國 地方千里 多木槿花)라는 구절이 있다. 이상의 문헌만으로도 한반도에는 수천 년에 걸쳐 무궁화가 널리 자생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입증된다. 신라의 효공왕이 897년 7월 당나라의 광종(光宗)에게 국서를 보낸 일이 있었는데 그 국서 가운데 신라를 자칭하여 근화향(槿花鄕)이라고 한 구절이 있다. 이 국서를 초한 사람은 중국에까지 문장가로 이름이 나 있던 최치원으로, 그의 문집인 〈최문창후문집 崔文昌候文集〉 제1권에 그 초안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러한 기록으로 미루어보아 이미 신라시대부터 한국을 '무궁화 나라'[槿城]라고 불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무궁화가 어떻게 한국의 나라꽃이 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은데, 조선의 윤치호 등의 발의로 애국가를 만들면서 후렴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구절을 넣음으로써 조선의 나라꽃이 되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대한민국이 수립된 직후인 1949년 10월 대통령 휘장과 행정·입법·사법 3부의 휘장을 모두 무궁화로 도안하여 문교부가 제정·사용했고, 1950년에는 태극기의 깃봉을 무궁화의 꽃봉오리로 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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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무궁화가 우리나라의 국화가 된 정확한 시기와 이유는 명확하지 않지만, 무궁화가 대표적인 국화로 자리 잡은 것은 국민적인 합의를 거쳐 1948년에 제정된 "대한민국 국화 법령"에 의해 공식적으로 국화로 지정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무궁화가 국화로 지정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무궁화는 대한민국 토착화초로서 역사와 전통이 깊게 뿌리 박혀 있어서 국민적으로 애호되고 있는 꽃입니다. 또한, 무궁화는 군자의 덕과 절개정신을 나타내는데, 이러한 가치가 대한민국의 역사와 정신적인 면모와 일치한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이외에도, 무궁화의 성격은 겨울철에도 꽃이 피어나서 국민의 인내심과 생명력을 상징하며, 꽃이 깊이 서식하는 고지대의 이미지가 대한민국의 지리적 특성과도 일치한다는 점도 국화로서의 적합성을 높인 것으로 평가됩니다. 이러한 이유들이 모두 결합하여 무궁화가 대한민국의 국화로 선정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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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는 법으로 정한 정식 국화가 없지만, 무궁화가 관습상 인정되고 있다고 합니다.

    무궁화는 예로부터 우리 민족의 사랑을 받아온 무궁화는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꽃으로 '영원히 피고 또 피어서 지지 않는 꽃'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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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무궁화가 우리나라 국화가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무궁화는 우리나라에서 매우 오래 전부터 사랑받는 꽃 중 하나입니다. 다른 꽃들과는 달리 꽃잎이 끝까지 펴져 있어 무궁한 생명력과 영원한 번영을 상징한다고 여겨져 왔습니다. 또한, 국민적인 열정과 불굴의 정신을 상징하는 꽃으로 평화와 통일의 상징으로도 자리 잡고 있습니다.


    무궁화는 또한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서도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고구려 시대부터 이미 무궁화가 그림과 시에 등장하였으며, 조선 시대에는 궁중에서 꽃이름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역사와 문화적인 배경이 함께해서 무궁화가 우리나라 국화가 되었습니다.


    1964년 8월 15일, 국어원은 대한민국의 국화로 무궁화를 공식 선정하였으며, 1971년 10월 2일, 대한민국 정부는 무궁화를 국화로 지정하였습니다. 이후로 무궁화는 대한민국의 상징적인 꽃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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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기원전에 만들어진 중국의 지리서인 산해경에 보면 군자의 나라에 훈화초라는 식물이 있는데 아침에 나서 저녁에 죽는다라고 나와있습니다.

    여기서 군자의 나라는 고조선, 훈화초는 무궁화입니다.

    또 중국 당나라 왕조의 정사가 쓰여있는 구당서에는 신라가 보낸 국서에 그 나라를 일컬어 근화향 곧 무궁화의 나라라고 하였다고 나오는데 이는 신라는 스스로를 무궁화의 나라라고 불렀다는 것을 알수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국화는 공식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무궁화는 꽃봉오리가 한번에 만개하지않고 순차적으로 피고 지기를 반복하여 보기에 꽃이 한결같이 항상 피어있듯 보이는데 이런 점을 두고 정절과 절개의 상징으로 보기도했고 현대에는 무궁화를 개개의 인간, 꽃이 계속 피고지는 나무 자체를 인류의 역사로 보는 견해가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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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홍휴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무궁화가 국화로 적합하지 못하다는 의견은 구한말에도 있었다. 나라의 앞날을 예측할 수 없던 그 당시에도 《황성신문》은, 무궁화는 국화로서 마땅치 않으니 복숭아꽃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후 일정 때에는 무궁화에 대한 시비가 있을 여지가 없었다.

    해방이 되면서 국화로서의 무궁화의 자격 문제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하였다. 소설가 이태준(李泰俊)과 같은 이는 무궁화는 나라꽃으로 적당치 않으니 우리에게 친근감을 주는 진달래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6·25전쟁 이후 무궁화가 국화로 적합한가에 관한 시비가 다시 일어나 1956년에는 지상논쟁이 벌어졌다.

    식물학자 이민재(李敏載)는 조선일보(1956년 2월 8일자)에, 무궁화는 국화로서 적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무궁화가 국화로 지정된 일도 없고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일이 없는 꽃이라 하였다. 그는 국화의 후보로 진달래를 추천하면서 국화가 될 만한 전제 조건으로 다음과 같은 조목을 제시하였다.

    • 국토 전역에 분포하고 있을 것
    • 우리나라 원산종(原産種)으로 민족을 상징할 수 있는 꽃일 것
    • 민족과 더불어 역사적인 친교가 있을 것
    • 이름이 고울 것은 물론 또 그것대로의 아름다움을 지녀야 할 것 등·······

    이보다 조금 앞서 조동화(趙東華)는 한국일보(2월 3~4일자)를 통하여 무궁화 부적격론을 발표하였다.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자생지가 전국적이지 않고 주로 중부 이남에 분포하고 있고
    둘째, 원산지가 인도임으로 외래식물이며
    셋째, 진딧물이 많이 붙고 단명허세(短命虛勢)하며
    넷째, 휴면기가 너무 길고 봄에 싹이 너무 늦게 돋는다.

    이 글이 그때의 모든 국민이 관심을 갖고 지켜 본 이른바 '국화 논쟁'의 시초이다.

    주요한(朱耀翰) 같은 이도 조선일보(2월 28~29일)에서, 대단히 좋은 꽃이지만 결점이 없는 것도 아니니 굳이 무궁화 대신 다른 꽃을 국화로 삼는다면 진달래보다 개나리를 추천하고 싶다고 했다. 진달래는 정열적인 대신에 번뇌상(煩惱相)이 있는데 개나리는 오직 명랑하고 쾌활한 것이 좋다고 하였다. 그리고 또 한 가지에 줄줄이 종기종기 의좋게 피어나는 것이 우리에게 합심협동의 정신을 가르쳐 주는 것 같다고 했다. 그 밖에 봉선화도 국화의 후보로 찬의를 표하고 싶은 꽃이라 하고 그 밖에 민요에서 친숙해진 도라지꽃과 버들꽃도 후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무궁화의 국화부적격론에 대해서는 강력한 반론이 일어났다. 이 반론은 당시 오랫동안 서울대 농대 화훼학 교실에서 무궁화를 연구해온 류달영(柳達永) 박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른바 무궁화의 국화적격론이다.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자생지가 전국적이지 않고 주로 남쪽지방에 분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주장은 1950~1960년대의 식물학자들 사이에서 보고된 것으로 그뒤 연구를 거쳐 잘못된 것임이 밝혀진 바 있다. 함경도 등의 북쪽지방에 무궁화가 보이지 않는 것은 심어 가꾸지 않기 때문이며 무궁화는 우리나라 어느 지방에서도 잘 자라고 번식이 잘되는 강인한 식물이다.

    둘째, "원산지가 인도임으로 외래식물"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역사적 기록과 고증을 통해 볼 때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무궁화는 우리나라의 토양에 맞아 2천여 년 이상 오랜 옛날부터 이 땅에 자생해온 꽃으로 원산지와 다름이 없는 식물로 되어 버린 것이다. 또 최근에는 인도·중국·한국지방이 원산지라는 설이 유력하다고 한다.

    셋째, "진딧물이 많이 붙고 꽃이 단명허세하다"는 점이다.

    무궁화에는 진딧물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관리를 잘하면 없앨 수 있다. 또 최근에는 계속된 육종으로 진딧물이 없는 무궁화가 등장하였다고 한다. 또 단명허세하다는 것은 같은 현상을 놓고 나쁜 쪽만을 말한 것이다. 하루만에 깨끗이 지고는 또 새로운 꽃을 계속 피워가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무궁화를 무궁화답게 하는 우리 민족의 꽃으로서의 특징 중 하나라 할 것이다.

    넷째, "휴면기가 너무 길고 봄에 싹이 늦게 돋는다"는 것이다.

    무궁화의 꽃이 늦게 피는 것을 결점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꽃이 늦게 핀다는 것이 결코 문제가 될 수 없다. 오히려 묵묵히 때를 기다렸다가 다른 꽃들이 대부분 지고 난 다음에 뜨거운 여름 햇살을 받으며 줄기차게 피어나는 모습이야말로 우리 민족성의 강인함을 잘 드러낸 것이라고 할 것이다. 무궁화는 계절적으로는 늦게 피지만 가장 부지런한 꽃이기도 하다. 새벽 5시 경에 피는 나팔꽃을 부지런하다고 하지만 무궁화는 이보다 더 일찍 꽃을 피운다.

    다섯째, 마지막으로 "무궁화의 꽃은 백합이나 장미처럼 아름답지 못하다"는 점이다.

    꽃에 대한 아름다움의 평가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다르다. 지구 위에는 어떤 것이라도 모든 미를 갖춘 것은 없다. 일본사람들이 그렇게도 아름다움을 상찬하는 사꾸라에 대하여 우찌무라 간조오(內村鑑三)라는 교수는 러일전쟁(露日戰爭)이 끝난 후 일본이 기고만장하던 시기에 공공연하게 사꾸라를 보잘것없는 꽃이라고 호되게 깎아내리고 사꾸라를 비꼬는 시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또 중국에서는 무궁화가 아름다운 꽃이라고 하여 이를 상찬하는 글이 수없이 전해지고 있다. 중국에서는 꽃이 고운 여섯 가지 종류를 모아 육연(六姸)이라 하였는데 작약·해당·이화(梨花)·부용·장춘(長春)과 함께 목근을 여기에 포함시키고 있다.

    그리고 국화는 아름다움이 반드시 그 전제조건이 될 수는 없다. 멕시코의 선인장, 그리스의 올리브, 캐나다의 단풍 등은 화려한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 나라의 상징으로 그 국민이나 외국인이 인정하고 귀하게 여기고 있다. 스코트랜드 같은 나라에서는 애국주의적인 전설 하나 때문에 엉겅퀴 같은 독특한 꽃을 국화로 사랑하고 있다. 즉 중세기 덴마크 군대가 침략했을 때 스코트랜드의 엉겅퀴 숲에 매복하였다가 그 가지에 찔려 패퇴한 유래 하나만으로도 지역과 민족의 상징이 되고 있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무궁화의 국화(國花)로서의 적정성 시비 (꽃으로 보는 한국문화 3, 2004. 3. 10., 이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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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의 사랑을 받아온 무궁화는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꽃으로 영원히 피고 또 피어서 지지 않는 꽃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기록을 보면 우리 민족은 무궁화를 고조선 이전부터 하늘나라의 꽃으로 귀하게 여기고 신라는 스스로를 "무궁화 나라"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우리 민족과 함께해 온 무궁화는 조선말 개화기를 거치면서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란 노랫말이 애국가에 포함 된 이후 더욱 국민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죠. 이같은 무궁화에 대한 우리 민족의 한결같은 사랑은 일제 강점기에도 계속되었고 광복후에 무궁화를 자연스럽게 나라의 꽃으로 자리 잡게 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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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보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무궁화는 우리나라에 법으로 인정되는 국화는 아닙니다.

    예전부터 오랫동안 우리 곁에서 피고 자라고 하는것이

    우리나라와 닮은점이 많고 해서 그렇게 불리였던것이지 정식으로 정해진 국화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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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나라의 무궁화는 오랜 시간 국민과 함께하며 자연스럽게 국화로 정해졌으나 아직 법적으로 정식 국화로 지정되지는 않았습니다.

    무궁화가 우리나라를 상징한 공식기록은 최치원의 글에서 처음 발견됩니다. 897년 통일신라가 중국에 보낸 국서에 국호를 대신해 ‘근화향(槿花鄕·무궁화 나라)’ 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역사학자 문일평은 "무궁화야말로 조선인의 이상화(理想花)이며, 사적(史的)의 유구한 관계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독립운동가였던 홍언은 무궁화를 국화로 정한 의미가 “꽃이 끊어짐 없이 계속하여 피어 봄빛이 무궁함으로써 그 뜻을 취하여 우리 민족성의 생존무궁을 대표한 것”에 있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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