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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훈한두꺼비124
훈훈한두꺼비12423.06.27

히틀러나 나폴레옹은 왜 러시아를 정복하지 못했나요?

한 번 지나간 나라는 모두 정복했던 히틀러나 나폴레옹이 러시아는 정복하지 못하고 돌아간 후 쇠퇴기를 맞았다고 하던데 그들이 러시아를 정복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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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2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그리고 러시아가 확실히 미국등의 연합국과 손을 잡기 전에

    러시아를 점령하고 싶었을것입니다

    다수의 적을 상대로 하기때문에 속전속결이 필수였겠지요

    그래서 무리하게 겨울에 진군했다가 피를본거구요

    제 생각에는 히틀러 최고의 실수가 무리한 러시아 원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북아프리카 전선쪽을 더 신경썼다면 어찌되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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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811년에 유럽 대륙을 장악하고 있던 나폴레옹은 에스파냐 지역을 제외하고는 4년간 전쟁이 없는 평온한 시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대륙 체제는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했고, 유럽의 점령 지역, 특히 독일에서 많은 사람이 해방 전쟁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들에게 나폴레옹의 군대는 너무나 막강한 존재였다. 유럽에서 나폴레옹의 권력에 도전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국가는 러시아밖에 없었다. 알렉산드르 1세는 프랑스와의 동맹에 만족하는 듯 보였다. 1809년에 핀란드를 합병함으로써 어느 정도 팽창 욕구를 채운 알렉산드르 1세는 투르크와 다뉴브 강에서 전쟁을 하고 있었다. 합스부르크 가의 왕가의 공주와 결혼하여 유럽 왕족의 일원이 되었으나, 나폴레옹은 러시아에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폴레옹의 미움을 산 슈타인이 러시아로 도피하게 된다. 슈타인은 유럽에서 반나폴레옹 세력이 증가하고 있음을 귀띔하며, 알렉산드르 1세가 유럽의 운명을 바꿀 유일한 인물이라고 찬사를 퍼부었다.

    이즈음 러시아는 대륙 봉쇄령으로 영국에 대한 농산물 수출의 길이 막혀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고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된 알렉산드르 1세는 1810년 12월 31일에 공식적으로 대륙 체제에서의 탈퇴를 선언하였다. 이로써 영국과 러시아 사이의 통상이 재개되고, 나폴레옹은 알렉산드르 1세를 직접 응징하기로 결정하였다.


    나폴레옹의 군대는 60여만 명의 연합군으로 구성되었다. 3분의 1은 프랑스 인이었고, 또 다른 3분의 1은 라인 동맹과 프로이센, 오스트리아에서 온 독일인들이었으며, 나머지 3분의 1은 폴란드 인을 중심으로 구성된 기타 민족이었다. 1812년 6월에 나폴레옹은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로 진군해 들어갔다. 3주 분량의 보급 물자만을 가지고 시작된 원정은 저항 없이 후퇴하는 적을 쫓아 러시아 깊숙이 들어가는 상황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대군은 후퇴하면서 물자를 현지 조달할 수 없도록 파괴하고 도주하는 러시아군의 작전에 말려 굶주림에 허덕여야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폴레옹군은 모스크바 근방의 보로디노에서 최초로 러시아군과 전투를 벌일 수 있었다. 결과는 러시아군의 피해가 5만 명, 프랑스측의 피해가 3만 명으로 나폴레옹의 승리였다. 러시아군은 다시 질서 정연하게 후퇴하였고, 모스크바에 입성한 나폴레옹은 굶주린 자신의 병사들에게 둘러싸여 텅 빈 시가지만을 정복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모스크바에 대한 방화가 시작되었지만 나폴레옹이 상상하였던, 항복 문서를 든 알렉산드르 1세는 어디에도 없었다. 당황한 나폴레옹은 5주 동안 모스크바에 머무르며 알렉산드르 1세와 협상을 시도하였으나, 러시아의 차르는 어떠한 제의도 거부하였다. 러시아에서 겨울을 맞게 되자,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나폴레옹은 후퇴를 명령하였다. 기나긴 후퇴의 행렬이 시작되었다. 불행하게도 그 해에는 겨울이 일찍 찾아와 후퇴하는 위대한 정복자의 군대를 사정없이 괴롭혔다. 여기에 모스크바 방화로 적개심에 가득 찬 러시아 인들이 도처에서 무기력한 프랑스군을 습격하여 엄청난 인명 손실을 가져왔다.


    원정의 결과는 참혹하였다. 61만 명의 원정군 중 40만 명이 죽고 10만 명이 포로가 되었다. 역사상 최대를 자랑하던 대군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실패의 소식에 지금까지 숨죽이고 지내던 독일 영방 국가들이 반나폴레옹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에 군대를 동원하였던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가 러시아와 동맹을 맺고 프랑스에 대해 선전 포고를 하였다. 유럽 전역의 프랑스 점령 지역에서 프랑스에 저항하는 모든 세력이 들고일어났다. 이탈리아에서는 반프랑스 폭동이 발생하였으며, 에스파냐에서는 웰링턴(1769~1852)이 피레네 산맥을 넘어 프랑스로 진격하였다.

    출처 : 독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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