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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마더77
망고마더7724.01.02

조선시대에도 중매를 하던 기록이 있었을까요?

문득 궁금해 지는데 조선시대에도 중매를 많이 했을거 같은데 조선시대에 중매에 대한 기록이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직업적으로 가지고 활동하시던 분들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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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5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서는 배우자를 선택할 때 혼인 당사자가 주체가 되는 자유혼이 있고, 당사자들은 객체가 되고 혼인을 결정하는 사람은 당사자들의 부모가 되는 중매혼인이 있었습니다. 후자의 경우 부모가 혼인에 대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큰 구실을 하는 사람을 중매인 또는 흔히 매파(媒婆)라고 했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랑 신부 양가 사이에서 혼인을 성사시키는 사람을 중매인이라 하는데요,

    중매인이 남자인 경우에는 ‘중신애(아)비’, ‘중신잽(잡)이’라 하고, 여자인 경우에는 ‘중신애미’, ‘중신할미’, ‘매파媒婆’라 부르기도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남녀 두 사람의 자유의사에 의한 결합은 야합이라 하여 배격하였으므로 매파라는 중간역할이 필요하였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직업적 매파가 개입되지 않는 수도 있는데, 서로 잘 아는 집안일 경우가 그런 경우죠.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혼인에는 반드시 중간역할이 필요하므로, 이와 같은 경우는 일가친척 중에서 매파를 대신하게 됩니다.

    고구려 건국신화에 주몽(朱蒙)의 어머니 유화(柳花)가 천제(天帝)의 아들 해모수(解慕漱)를 자유롭게 만났다 하여 부모의 내침을 받은 것도 “중매 없이 남자를 따랐다”는 것이 죄목이었고요,

    유교적 예의를 숭상하던 조선사회에서는 더 말할 나위도 없었습니다. 조선시대 때는 내외법이 엄하여 양반 부녀자는 가마가 아니면 쓰개치마를 쓰고 다니던 시절에, 남의 집 안방까지 드나들면서 일이 성사되도록 언변을 토한다는 것은 신분이 천한 여인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중매를 업으로 하는 사람은 상민계급의 여인들이 많았습니다.



  • 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 수모라는 직업이 있었고

    혼례를 할 때 신부의 들러리 역할을 하였고

    수모가 중매도 하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사회 혼례에서 주자의 가례에 따라 사례가 통용되며 의혼의 경우 반드시 중매인을 세우도록 되어있었습니다.

    중매를 하는 사람 가운데 그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도 있어 세칭 중파 또는 매파 라고 불렸으며 일반적으로 두 집안의 사정을 잘 알고있는 친척이나 지인이 담당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염민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네 조선시대에도 중매쟁이는 있었으며

    여러 서적에서 그 기록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소설에서도 주인공들의 중매를 연결하는 중매쟁이들이 등장인물로 나올때도 있고요

    특히 귀족사회에서도 중매활동이 활발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