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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한발발이142
로맨틱한발발이14224.02.21

조선시대 양반과 노비 신분은 태어날때부터 고정적이었나요?

조선시대에 양반이나 노비는 태어날때부터 정해져서 거스를 수 없었나요?

노비에서 양반이 되거나, 반대로 양반이었는데 노비로 몰락하는 경우가 없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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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7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의 양반과 노비 신분은 일반적으로 부모의 신분에 따라 결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일부 예외적인 경우에는 다른 신분으로 전환될 수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노비가 주인으로부터 자유로워지거나, 양반이 노비로 강등되는 경우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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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은 계급 사회였고, 그 계급은 세습되었습니다.

    양반이 노비가 되는 것은 대역죄를 지었을 때 노비가 되었습니다.

    노비들도 나라에 큰 변란이 생겼을 때 공을 세우면 양반이 될 수도 있었으나, 아주 드문 경우였습니다.

    갑오개혁 이후 신분제도는 폐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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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신분제는 양천제지만 실질적으로 양반, 중인, 상민, 천민의 반상제입니다. 이 가운데 양반은 관직에 오를 수 있는 신분을 뜻합니다. 조선 초기에는 과거에 합격하여 관직에 오른 사람들만 양반이고 중기 시험에 합격하지 않더라도 4대 안에 관리를 배출하면 양반 가문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점차 양반의 자식은 양반으로 완화되어 과거를 치를 신분이 됩니다.

    천민 가운데 대다수는 노비입니다. 노비는 재산으로 취급되어 매매, 상속, 증여가 가능하였습니다. 노비 신분은 자손에게 세습되었는데,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그 자녀도 노비가 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조선시대 신분의 변화는 가능했습니다. 상민이 과거를 통해 양반이 되고, 반대로 양반이 역적이 되어 노비가 되기도 했습니다. 조선 전기까지만 하더라도 양반 중심의 신분 질서였으나 양난 이후 양반 중심의 신분 질서가 붕괴되었습니다. 특히 하층민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신분을 상승시켰습니다. 노비는 군공, 납속, 공명첩, 도망 등을 신분을 상승시켰으며, 정부의 노비종모법과 공노비 해방 정책도 신분의 변화를 초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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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경제·금융전문가, 인문·예술 전문가 조유성 AFPK 입니다.

    ✅️ 네, 그렇습니다. 단, 조선 중기 이후 납속, 공명첩 등을 통해 신분 상승을 할 수 있었으며 이렇게 신분을 살 수 있게 되자 조선 후기가 되었을 때는 오히려 양반의 비율이 크게 증가하기도 했었습니다. (* 양반도 몰락한 양반인 '잔반'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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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양반과 노비등의 신분은 대대로 이어지는 것이 보통 입니다. 물론 이러한 신분이 바뀌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양반이 역적의 죄를 지다 던가 하면 노비가 되는 경우도 있으니 신분이 아예 바뀌지 않는 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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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염민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태어날때부터 신분은 고정되어졌습니다.

    양반가문의 경우 반란과 같은 커다란 죄를 저지를경우

    몰락할 수 있었습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답변자에게 힘이되는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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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역적된 양반 자손 이나 범죄자, 빚쟁이 양인이 노비가 될 때가 많았고

    그렇게 한번 노비되면 엄청 운이 좋아서 면천되기 전까진

    가문 대대로 노비였습니다

    (면천=노비가 양인이 되는것

    양인= 조선식 평민)

    양반은 일단 조선 초기에는 "과거시험 합격자에게 그 후 가문 3대 동안 주는 혜택"

    의 일종 이었지만 공부를 하려면 돈이 있어야하니

    조선 중기쯤 부터는 그냥 되던 가문만 되서 고착화 된 거구요

    일단 양인 중에서 뇌물이던 실력이던 급이 되서 과거에 자주 합격하면

    양반이 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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