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민왕이 즉위하게 된 정치적 상황은 어떠했나요?
고려말기 시절에 공민왕이 고려왕으로 즉위하게 된 정치적 상황은 어떠했으며 어떻게 하여 고려의 정치와 왕권을 강화시켜나간건가요?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
공민왕의 정치적으로 즉위했을 때는 원간섭기 시절로, 즉위 당시에는 원나라에 영향을 받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즉위 이후 원나라의 힘이 약해지면서 (홍건적의 난, 원나라 내부 분란 등) 자주적으로 힘을 키울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 됩니다.
공민왕은 이 시기를 놓치지 않고, 원의 영향력을 지우는 작업을 하면서 왕권을 강화시킵니다. 이전까지 사용하던 원나라 연호라던가 몽골식 제도, 풍습들을 폐지하고 원의 내정간섭 기구였던 정동행성 이문소를 폐지합니다. 그리고 북쪽 원의 통치 구역이었던 쌍성총관부를 무력으로 탈환하여 영토를 넓히기도 하구요. 이 당시 원나라는 많이 쇠약해져 있어 이를 보복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또한 당시에 민생을 어지럽히고 있던 권문세족들을 견제하였는데, 대표적으로 신돈의 개혁을 들 수 있습니다. 권문세족의 토지나 노비들을 환수하도록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하였고, 당시 권문세족과 결탁한 불교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신진사대부들을 등용하였습니다. 이때 등용된 신진사대부들은 상당히 개혁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고, 이후 조선 건국의 기틀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민왕이 즉위한 1351년은 원나라의 간섭이 약해지고 명이 부상하던 시기입니다. 고려는 한동안 원의 부마국으로 친원 세력인 권문세족이 막한 권력을 행사하였습니다. 당시 고려 왕위는 원나라의 정치적 이해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지배층은 농장을 확대하고, 민생은 피폐했습니다.
공민왕은 즉위 이후 반원 자주 정책을 시행하여 기철 등 친원파를 척결하고, 정동행성을 페지하였습니다. 그리고 관제를 복구하고 몽골풍을 일소하였습니다. 또한 쌍성총관부를 무력으로 회복하여 영토를 확장하였습니다. 그리고 권문세족이 가지고 있었던 기득권을 제거하기 위해 정방을 폐지하고, 전민변정도감을 설치, 운영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