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클랜드 섬은 아르헨티나 바로 앞에 있는 섬인데 언제 영국의 땅이 된 것입니까
포클랜드 섬은 지정학적으로 볼 적에 볼 적에 아르헨티나와 가장 가까워 얼핏 보기에는 아르헨티나의 영토인 것처럼 보이는데요 언제 영국의 땅이 된 것인지 역사적 배경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832년 영국이 포경기지로서 영유권을 선언한 뒤 영국령이 되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때에는 남대서양의 중요한 영국 해군기지였고 부근의 해상에서 영국·독일 함대의 전투가 벌어졌다고 합니다.
근래 칠레 ·아르헨티나가 이 제도의 영유권을 주장해 왔으며, 1982년 4월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이 동포클랜드섬을 점령함으로써 영국과 아르헨티나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75일간에 걸친 전쟁에서 두 나라 모두 큰 피해를 입었으며, 아르헨티나 대통령 갈티에리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났습니다.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833년 1월 3일, 영국군은 포클랜드 제도를 찬탈하여 아르헨티나 당국과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추방하고 아르헨티나의 영토 보전을 깨고 불법 점령을 시작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764년 프랑스인들이 동 포클랜드 섬에 정착해 루이 요새를 세웠고 1766년 영국이 손더스 섬에 기지를 세웠는데 이때 양측이 서로의 존재를 인지했는지 여부는 알수 없습니다. 프랑스는 1766년 포크랜드 제도가 쓸모없다 판단해 스페인에게 영유권을 팔고 4년 뒤 앞서 세운 영국의 기지를 발견한 스페인인이 침공해 점령했으나 다음해 영국에 반환하나 영국은 영유권을 표시하는 명판을 남겨둔 채 다시 철수, 후 스체인 정부당국은 죄수 캠프로 쓰다 중도에 철수해 무인도가 됩니다.
유럽에 나폴레옹 전쟁이 일어난 동안 모국의 혼란을 틈타 1816년 아르헨티나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아르헨티나는 이 영토도 같이 승계받았다고 주장하는데 당시 포클랜드 제도에는 유럽인들이 모두 철수해 무인도가 된지 40년이 지난 뒤였고, 4년 뒤 아르헨티나는 이 지역이 자신의 영토라고 선포하고 미국인 사략선장을 파견했는데 여전히 무인도로 남겨두었습니다.
1823년 아르헨티나가 독일인 상인을 보내 기지를 설치하지만 그의 불법적인 어선 나포와 해적 행위에 분노한 미국 정부가 함선을 파괴, 포클랜드 제도에서의 해적행위에 대한 소식을 들은 영국이 함선을 보내 섬을 점령합니다.
이후 영국의 통치를 받았고 영국은 다수의 이주민을 보내 정착시키고 자국 영토로 삼았습니다.
고래와 바다표범을 잡거나 목축업 등을 했고 1914년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에서 쫓겨온 독일해군 아시아 분함대가 이 주변을 지나가 영국 해군에게 발각당해 전멸,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열강 국가들이 식민지를 유지할 능력이 없어지고 탈 식민지화 추세가 나타나자 아르헨티나는 약 1세기만에 포클랜드 제도의 영유권을 주장, 그러나 이미 포클랜드 제도의 지역 주민들이 대부분이 영국에서 이주해온 영국인 이주민들과 그 후손들이었으므로 이들 지역 주민들은 아르헨티나로의 귀속을 반대합니다.
이러한 배경으로 양국 간에 이 일대를 둘러싸고 1960, 70년대까지 여러 차례의 영유권 협상이 있었으나 영국 측의 거부와 지역주민들의 아르헨티나 귀속 반대 여론으로 인해 모두 결렬되었고 크고 작은 이유와 정치적 목적으로 결국 1982년 아르헨티나 군부 독재 정권에 의해 포클랜드 전쟁이 일어납니다.
영국은 유사시 전쟁을 예상치 못해 포클랜드 제도에 군 병력을 거의 주둔 시키지 않아 당시 주둔병이라고는 해병대 100여명이 전부였지만 곧 모든 군사력을 동원해 치열한 전투 끝에 아르헨티나군을 격차, 결국 포클랜드 제도를 탈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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