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무과시험은 창술과 검술이 나눠져 있었나요?
사극을 보면 일반병사들은
검이 아닌 창을 들고 있던데
조선시대의 무과시험은
창술과 검술을 따로 구분해서 치르게 했나요?
장군들은 활도 잘쏘던데
창술, 검술, 활 등 당시에 있었던
모든 무기들이 무과시험의 과목이였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무과는 이론/실기를 주로 보았습니다. 이론은 병서로 잘 알려져 있던 [육도],[삼략],[손자병법],[오자병법]과 같은 병법서에 대한 문제를 출제하였다고 합니다.
문의주신 부부은 실기과목으로, 무예의 능력을 보았습니다. 주요 과목은 기창(말을 타고 쓰는 창술), 보장(걸어서 쓰는 창술), 편전(단거리 사격), 대궁(장거리 사격), 기마술(마상 무예 능력)이었으며 주요 과목에 검술은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실제 전쟁과 전투 시 장병기 위주로 사용을 많이 하기 때문에 주요 과목에 검술을 포함하지 않았고, 장병기가 무너진 최후의 상황에서 검술을 쓴다고 생각하여 보조적인 무예로 보았습니다.
정조 시대에 만들어진 [무예도보통지]에서는 검술 무예도 기록되어 있으며 정조 시대 이후에는 무예도보통지를 합격의 기준으로 보았다고 하니 좀 더 중요도가 올라가긴 하였지만, 무과에서 주로 보았던 과목은 창술과 활쏘기였습니다.
조선 전기 무과 시험의 핵심 과목은 궁술과 창술이었습니다. 실제로 <경국대전> 등 공식 문헌에 따르면 창과 활을 주요 과목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술은 말을 타고 수행하는 기창만 시험에 포함되어 있으며, 보창은 제외되었습니다. 그리고 검술은 무과 시험에 독립적인 과목으로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임진왜란 이후 검술과 창 같은 단병접전 무예가 조금씩 강호되어 보조적으로 다루어 졌으나 조선 후기까지도 공식 무과 싷ㅁ에 검술은 제외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