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에 김훈과 최질의 난은 무신정변과 어떤 차이가 있나요?
김훈과 최질은 거란 1차전쟁때도
상당한 공을 세워 상장군의 자리까지 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김훈과 최질은 난을 일으켰는데
당시 김훈과 최질이 난을 일으킨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그리고 김훈과 최질이 이후 일어나는 무신정변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나요?
김훈과 최질의 난은 무신정변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아니면 김훈, 최질의 난의 결과가 무신정변으로 이어진 것인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김훈, 최질의 난은 고려 현종(1014) 때 김훈과 최질이 일으킨 무신 정변입니다. 김훈과 최질은 거란과의 전쟁에서 공을 세워 상장군에 오른 무관들이었지만, 문관들의 우대와 군사비 회수에 불만을 품었습니다. 그러나 문신들의 완전히 제거하지 않고, 국왕도 유지한채 일시적으로 권력에 앉아 지속되지 못했어요.
반면에 의종(1170) 때 정중부, 이의방, 이고 등이 일으킨 무신 정변은 문신들의 완벽하게 제거하고, 의종마저 죽였으며 중반을 통해 국정을 장악했습니다. 특히 최충헌은 교정도감 및 삼별초 등의 권력 기구를 바탕으로 60여년간 최씨 집권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영업전을 벅탈당한 자들이 반란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었던 점을 볼때 영업전은 그들의 생계와 직결되는 중요한 경제 기반이었을 것입니다.
이들은 1010년(현종 1)에 거란 침입시 이들을 격퇴하고 상정군에까지 오른 인물입니다.
당시 문신을 우대하고 무신을 천시한 데에서 무신란의 선구가 된 사건이라고 하겠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염민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김훈과 최질의 난은 왕의 떨어진 권력을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일으킨 것입니다.
물론 이후 무신정변이 일어나긴 하였지만 이 난이 그 영향을 주었다고 하기는 힘듭니다.
무신의 소외는 계속되었으며, 결국 불만을 못이긴 무신들이 난을 일으킨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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