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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함23.07.12

고려와 조선시대 전쟁 시 진법이 궁금합니다.

옛날에는 백병전이 대다수였습니다. 현대전투와 달리, 수군 이순신 장군의 학익진처럼 육군도 진법이 있었던 것으로 예상됩니다. 과연 어떤 방식으로 장수와 사병들을 배치했는지 궁금합니다. 즉 선봉, 1진, 돌격대, 후미 등등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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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말부터 병학의 원리에 입각한 체계적인 진법을 구축하고자 하는 노력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는데 그렇게 만들어진 진법이 오위진법이다.

    오위진법은 대규모 부대와 소규모 부대의 전술을 함께 운용할 수 있는 전술 체계다. 가장 특이할 점은 기병과 보병을 동일한 비중으로 편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각 부에 반드시 기병 2통과 보병 2통을 두도록 하여, 기병을 절반 이상으로 편성하도록 하였다. 이는 보병 못지않게 기병을 중요한 전투력으로 삼아 그 비중이 상당히 높았던 당시의 상황을 보여준다. 조선초기 야인 정벌에 참여한 조선군은 대다수가 기병으로 편제되어 있었다는 것도 이를 반증한다. 이전보다 기병의 비중이 상당히 높아진 것에서 이 진법이 기본적으로 북방의 여진 기마병에 대응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오위진법에서는 기병과 보병을 각각 동일하게 편성하되 각 병종의 구성은 상당히 다양하게 편성하였다. 기병의 경우에는 전체 인원의 5분의 3은 사수(射手), 5분의 2는 창수(槍手)로 구성하도록 하였다. 보병의 경우에는 궁수(弓手), 총통수(銃筒手), 창수와 검수(劒手) 그리고 팽배수(彭排手)를 갖추되 총통수와 방패수의 인원수는 반드시 정해진 수를 따르도록 하였다. 이를 통해 기병은 사수가 중심이며, 보병의 경우에도 궁수, 총통수 등 다양한 병종으로 구성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북방 기병이 주로 창과 궁시로 무장하고 소규모로 산개하여 공격하는 전법을 구사하는 것에 대응하기 위해 기병은 기사(騎射) 무예로서 대응하고 보병의 경우에도 궁수, 총통수와 같은 장병기로 무장한 병종을 중심으로 대응하는 전술을 채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위진법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대규모 부대의 지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하여 다량의 깃발과 징, 북[形名]을 구비하도록 한 점을 들 수 있다. 이는 대규모 부대 운용으로 인해 일사불란한 지휘에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이다. 아울러 진형은 이전과 같이 방진, 원진, 곡진, 직진, 예진의 다섯 가지가 제시되어 있지만, 부대의 규모에 따라 오위독진(五衛獨陣), 오위연진(五衛連陣), 합진(合陣)의 진형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병세의 규모와 지형에 따라 다섯 진형뿐만 아니라 장사진(長蛇陣), 학익진(鶴翼陣), 언월진(偃月陣), 어린진(魚鱗陣), 조운진(鳥雲陣) 등을 사용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다양한 진형이 활용될 수 있는 것은 당시 기병의 비중이 높아 상황에 따라 신속하게 진형을 변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