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진지왕의 자손은 어떻게 중용될 수 있었나요?
신라의 진지왕은 폐위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긔 아들인 김용춘은 중용되었다가 사위가 되었고 그의 아들인 김춘추는 왕위를 이어받기도 했는데 폐위된 왕의 자손이 어떻게 중용되고 정상적으로 왕위도 이을수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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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답변이 있어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진지왕은 신라 25대 국왕으로 진흥왕의 둘째 아들이었으나 정란황음으로 폐위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용춘은 성골에서 진골로 족강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진골도 왕족으로 국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용춘은 진평왕의 딸 천명공주와 혼인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진덕여왕 이후 성골 왕위가 단절되어 유력한 가문으로서 김춘추는 국왕에 즉위할 수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서기 654년 봄,
진덕여왕이 죽자 신라엔 성골이 더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선덕여왕 즉위때부터 남자 성골이 씨가 말랐다.
하는 수없이 마지막 성골 여인인 선덕과 진덕을 차례로 왕으로 세운 것이었는데 , 이는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았다.
성골이 멸종했으므로 그 다음 신분인 진골은 신하들이 차지했습니다. 신하중 누군가가 왕위에 올라야 했는데 이때 등장한 인물이 김춘추이며 훗날의 태종무열왕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