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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27

남한산성은 언제부터 만들어진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남한산성은 언제부터 만들어진 것인가요?


무슨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며


역사적으로 어떠한 가치를 가지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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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6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세운 시기와 주체에 대해선 2가지 주장이 엇갈립니다. 백제가 한성을 수도로 삼던 때 세웠다는 것, 다른 하나는 신라가 쌓았다고 하는 주장성이라는 의견이다. 백제 때 쌓은 성이란 주장은 이미 조선 초기부터 꾸준히 나왔습니다. 한강 유역에 도읍을 정한 백제는 내 · 외 여건 때문에 하북위례성-하남위례성-한산-한성 등 여러 차례 천도를 단행하였다. 남한산성이 전략상 요충지이기 때문에, 조선 시대 사람들은 백제 왕도 중 하나이리라 생각한 것이다. 《조선왕조실록》 · 《신증동국여지승람》 · 《대동야승》 · 《연려실기술》 · 《여지도서》 · 《대동지지(大東地志)》 등, 대부분 조선 시대 책들은 백제 고성이라고 적었다. 다만 발굴조사 결과 신라 계통 유물은 나왔지만 백제 계통 유물이 마땅히 발견되지 않는 것은 약점입니다. 아무래도 신라가 삼국통일을 했으니 백제의 물건을 치웠을 수 도 있습니다.

    주장성이란 주장은 《삼국사기》에 근거한 것이다.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가 멸망한 직후 당나라와 맞붙은 나당전쟁이 한창 벌어지던 문무왕 12년(672), 만에 하나 당나라 군대를 임진강 선에서 막지 못할 경우, 바로 다음 방어선으로 활용하고자 남한산 주위에 둘레 4,360보 규모로 성을 쌓았는데, 그 이름이 주장성이었다. 남한산성이 신라 주장성이라는 설 역시 《세종실록지리지》 등 옛 자료에서 언급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최근 수행된 남한산성 행궁지 기단과 그 주변 지역 발굴조사 결과 신라계 유물이 출토됨으로써 남한산성은 신라 주장성일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그 후 임진왜란 중인 선조 28년(1595) 남한산성 자리에 다시 성을 쌓았고, 광해군 13(1621)에 개수했다. 인조 2년(1624)에는 인조가 총융사 이서에게 명하여 다시 개축했습니다.

    출처: 나무위키 남한산성


  • 잘난몽구스218
    잘난몽구스21823.05.27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축조되어 조선시대 수도 한양을 지키던 성곽입니다.

    북한산성과 더불어 서울을 남북으로 지키는 산성 중의 하나로 신라 문무왕 때 쌓은 주장성의 옛 터를 활용해 1624년 인조 2에 축성했습니다.

    남한산성은 군수 물자를 저장하는 특수 창고를 설치한 중요한 거점성이었고 조선시대에는 외성과 옹성을 갖춘 전형적인 산성이며 산성의 변화 과정과 기능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됩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흔히 북한산성(北漢山城)과 함께 조선의 도성인 한양의 방어를 위하여 쌓은 산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발굴조사 결과, 8세기 중반에 조성된 성벽과 건물터 등이 확인되어, 신라 주장성(晝長城)의 옛터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남한산성은 주봉인 해발 497.9m의 청량산을 중심으로 북쪽으로는 연주봉(467.6m), 동쪽으로는 망월봉(502m)과 벌봉(515m), 남쪽으로도 여러 봉우리를 연결하여 성벽을 쌓았습니다. 성벽의 바깥쪽은 경사가 급한데 비해 안쪽은 경사가 완만하여, 방어에 유리하면서도 적의 접근은 어려운 편입니다. 봉암성(蜂巖城), 한봉성(漢峰城), 신남성(新南城) 등 3개의 외성과 5개의 옹성도 함께 연결되어 견고한 방어망을 구축하였습니다. 성벽과 성 안에는 많은 시설물과 건물이 있었지만, 지금은 동·서·남문루와 장대(將臺)·돈대(墩臺)·보(堡)·누(壘)·암문·우물 등의 방어 시설과 관청, 군사훈련 시설 등이 남아 있습니다.

    남한산성의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게 인정되어 2014년 6월 카타르 도하에서 개최된 유네스코 총회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신규 등재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자료에 따르면 남한산성은 1624년(인조 2) 험준한 산악의 지세를 이용하여 건설한 초대형 산성인데, 신라 문무왕(文武王) 때 세워진 주장성(晝長城) 터를 기본으로 축조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http://contents.history.go.kr/mobile/kc/view.do?levelId=kc_r300255&code=kc_age_30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옛 중부면) 산성리에 있는 남한산의 산성이다. 광주시에 거의 전부가 있지만, 성남시와 하남시에도 영역을 뻗으므로 3개 지자체에 걸친 성곽이다. 성남 쪽에서 들어가는 게 접근성이 좋기에 남한산성의 극히 일부만 걸친 성남시에서도 남한산성을 많이 홍보하곤 한다. 사적 제57호로 지정되었으며, 경기도에서 도립공원으로 관리한다.


    삼국시대부터 있었고 조선 인조 때 손을 보았는데, 해발 497m인 청량산(淸凉山)을 서쪽 끝으로, 해발 514m 벌 봉을 동쪽 끝으로 하여 긴 장방형 돌로 쌓았다. 서쪽은 경사가 가파르고 높아서 험난하며, 다른 쪽은 능선이 긴 반면, 성안은 낮고 평평한 분지 형상이다. 북한산성과 함께 한양을 지키는 2대 산성이었다.

    -출처 나무위키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남한산성은 대한민국 경기도 하남시에 위치한 역사적인 요새로, 조선시대인 17세기 후반에 건설되었습니다. 이 요새는 조선시대 말기부터 대한민국 광복 이후까지 군사적 중요성을 가졌으며, 다음과 같은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