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정말 좋은 질문입니다^^(좋아요!)
박열은 일본으로 건너간 일제 권력자를 제거를 목표로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으며, 이 때문에 '불령선인'으로 지목됩니다. 게다가 안타깝게도 1923년 관동 대지진으로 확산된 조선인 대학살에 피하려 자진 체포되었으나 박열과 후미코 부부는 황태자 암살 혐의로 나란히 일본의 법정에 서게 됩니다. 단순한 범죄자가 아니라 일본의 체제를 전복하려는 대역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박열은 재판에 서는 조건으로, '조선의 예복을 입게 해줄 것', '법정에 서는 취지를 본인이 선언하겠다는 것', '조선어로 이야기할 수 있게 통역을 준비해줄 것', '자신은 죄인이 아니니 재판관이 앉는 좌석과 눈높이를 동등하게 해줄 것' 등을 요구합니다. 이는 박열이 비굴하게 권력에 타협하는 대신 죽음을 무릅쓰고 저항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일제는 고심 끝에 앞의 두 가지 요구만 수용해 줍니다. 당시 일제는 관동대학살로 국제적 비난 여론을 의식하여 대역죄인으로 체포된 박열의 요구도 기꺼이 수용하는 모양새로 '문명국가'라는 이미지를 보여주려고 했던 것이었습니다. /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