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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철한말
냉철한말22.11.09

성씨가 없던 계층에게 어떤 기준으로 성씨가 정해졌을까요?

조선시대에 하위계층. 예를들어 백정에게는 성씨가 없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조선말 모두에게 성씨가 붙여졌을거라 생각되는데 원래 성씨가 있었던 계층 외에 그렇지 못한 계층들은 어떻게 성씨를 정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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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초기 성은 양민에게 까지도 보편화되었으나 노비와 천민계급 등은 조선 후기까지도 성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천민층까지 모두 성을 갖게 된 것은 신분체제가 붕괴되기 시작한 임진왜란(1592) 이후 한말(韓末)에 이르러서였습니다.


    이들 천민층이 전쟁터에서 특별한 공훈을 세우는 경우에는 노비 신분에서 풀어주어 평민 신분으로 인정해 주었으며, 전란후 사회체제의 변동에 따라 하급관리인 서리 등으로 등용되기고 했습니다.


    즉, 노비들이 양인으로 신분상승을 한다는 것은 그때까지 양인층 이상만 가질 수 있었던 성을 그들도 갖게 되었음을 뜻합니다


  • 안녕하세요. 천지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성씨를 갖게 된 것은 삼국시대 부터 였습니다. 중국과 교류하면서 한자를 사용한 왕족과 지배층이 성씨를 갖기 시작한 것이죠.

    성씨와본관이 보편화 된단 고려 때 부터 였습니다. 성씨와 본관제도를 최대한 활용한 사람은 고려 태조 왕건 이었습니다.

    성씨가 없던 사람들은 하층민이 도망가거나 공명첩 등 비정상적인방법으로 성씨를 족복세탁이 이루어졌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성씨가 생긴 것은 비교적 최근일이라고 보여지는데, 일반적으로 하위계층의 사람들은 주인의 성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고, 신분이 낮았지만 돈은 많았던 사람들의 경우 족보를 사서 자신의 성으로 삼기도 하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모든 노비가 다 성씨가 있었던 건 아니고 아버지가 성씨가 있는 양인(평민)이고 어머니가 천민(노비)신분이면 자식은 노비가 됩니다. 이를 자식의 신분은 어머니를 따른다고 해서 노비 종모법이라도 하는데 대표적인 예가 바로 우리가 잘아는 장영실(아버지가 원나라 유민), 정충신(아버지가 동네 아전) 같은 경우가 바로 대표적인 예라고 할수 있지요. 이런 경우에는 아버지 성이 있는데 굳이 안쓸 이유가 없지요. 그와 반대로 아버지도 노비, 어머니도 노비인 경우에는 돈을 주고 평민이나 양반의 신분을 사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자식들도돌쇠,개똥이 등과 같은 성씨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 이였습니다.

    그러다가 1909년 일제가 민적법 시행시 세금을 걷어드리기위해서 성씨가 없던 천민들에게 다시 그들이 원하는 성씨의 호적을 일본이 주게되는데 그 때 가장 인기 있던 성씨가 흔하면서도 유명한 "김, 이, 박 등 이였습니다. 그때 이후로 바로 이러한 성씨들이 더욱 흔해지게 된 것이죠.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되었는지 모르겠네여. 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김영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노비들 같은 경우

    자신의 주인의 성을 따르는게 일반적이었고

    이외의 성이 없는 하층민의 경우

    그냥 이름으로만 불리면서 살았습니다.


    1909년 갑오개혁때를 계기로

    민적법이 생기면서 다들 성을 갖게 되었는데

    따를 성이 없던 하층민들은

    이때 노비들은 주인성을 따라갔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족보를 사거나

    그냥 다른 사람들이 쓰던 대성(김,이,박,최)로 정한 사람들도 있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