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의 도서관은 다음과 같습니다.
조선조에는 인재양성을 목적으로 문학에 재질이 있는 학자를 선발하여 책을 읽고 질문에 대비하거나 자신들의 사상을 밝힐 수 있는 토론의 장소를 마련하기도 했다. 세종 때 설치된 집현전은 왕실의 학술과 문화정책을 위한 중심기구로서 도서관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이곳에는 다섯 칸의 장서각(藏書閣)을 짓고, 고금의 경적을 수장하여 그 기능을 도왔다.
1456년(세조 2)에는 집현전이 혁파되었고, 1463년에 설치된 홍문관으로 그 기능이 이관(移管)되었다. 당시 홍문관 내에 등영각(登瀛閣)이란 장서처를 마련하여 집현전에서 이관된 서적과 새로 인출된 책과 서사관(書寫官)들의 선사본(繕寫本) 및 화원이 제작한 화첩, 왕의 재가를 얻어 연경에서 구입한 서적 등을 소장하였다.
정조조에는 왕권을 위태롭게 하던 척리와 환관들의 음모와 횡포를 누르고, 학식 높은 학자들을 모아 통사(統史)를 토론하게 하고 정치의 득실을 살피는 한편, 문교의 진흥책으로 설립된 규장각(奎章閣)이 있었다. 정조는 집권하자마자 창덕궁 후원 연못 북쪽에 2층의 누각을 지어 1층은 어제존각(御製尊閣), 2층은 주합루(宙合樓)라는 이름을 어필로 달았다. 주합루 서쪽 바로 옆에는 서향각(書香閣)을 지어 서재로 사용하였다.
그 후 1층의 어제존각을 규장각으로 개칭하고 자신의 왕위에 관련된 어진·어제·어필·보책·인장 등을 소장하였으며, 서남쪽에 건물을 새로 지어 이름을 봉모당(奉謨堂)이라 하여 이곳에 역대 선왕의 유품들을 소장하였다. 당초의 서재인 서향각은 이안각(移安閣)으로 개칭하여 주합루와 봉모당의 서적들을 포쇄하는 장소로 사용되고, 서향각에 소장된 책들은 연못 남쪽 건너편에 열고관((閱古觀)과 개유와(皆有窩) 두 채를 신축하여 중국책 만을 골라 소장하였다. 책이 많아지자 이안각의 서쪽에 서고를 하나 더 지어 이름을 서고(西庫)라 하고 우리 나라 책만을 소장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도서관 [library, 圖書館]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