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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속의 말똥구리
땅속의 말똥구리23.06.29

백남준 작가님의 제품이 유명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술전시회를 다니다 보면 백남준 작가님의 작품은 간혹 접할수 있는데요. 뭔가 흔하게 보지 못했던 작품이라는건 느낌상 그렇지만 세계적인 작가님이 된건 어떤 작품의 특징때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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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6.29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선생의 대표 공연, 전시회는 다음과 같습닏.

    1960년대 존 케이지에 대한 경의, 총체, 걸음을 위한 선, 달은 가장 오래된 TV

    1970년대 비디오 꼬뮨, 글로벌 그루브, TV부처, TV정원, TV물고기(비디오물고기), 과달카날 레퀴엠, 머스 바이 머스 바이 백

    1980년대 태내기 자서전, 실제 물고기/생방송 물고기, 굿모닝 미스터 오웰, 바이 바이 키플링, 손에 손잡고

    1990년대 징기스칸의 복권, 삼원소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그는 특유의 파격적인 예술적 세계관을 유명하고, 비디오라는 현대적이고 시각적으로 효과 범위가 넓은 매개체를 통해 삶과 예술을 집결시켰습니다.

    기술 및 텔레커뮤니케이션이 인간 생활에 기여할수 있는 역할을 탐구, 관객과의 참여, 상호 소통으로 삶의 예술화를 표현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젊은 전위 음악가 백남준은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과 함께 플럭서스(fluxus) 운동을 주도했다. 그러면서 그는 공연형식이 결합된 보다 새로운 예술을 구상하게 된다. 이의 실현을 위해 그는 TV를 전략적으로 선택한다. 영화의 움직이는 이미지를 시간의 지연 없이 먼 곳에서도 볼 수 있게 하고자 한 것이 텔레비전이다. 1936년 독일 베를린올림픽 경기 중계를 통해 텔레비전의 위력은 일찍이 증명되었다. 무엇보다 짧은 순간에 전파가 닿는 범위에 있는 모든 사람이 한 채널에 집중하는 집단 전체의 가치와 이념에 큰 영향을 미치는 강력한 것이었다. 이를 입증하듯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에는 TV는 전 세계에 폭발적으로 보급되었다. 백남준의 첫 개인전은 그의 동료들조차 눈치 채지 못하게 비밀 작업실에서 엔지니어와 함께 준비되었다. 이때 그의 텔레비전을 활용한 작품 구상은 전자악기에 가까운 시각적 공연 같은 것이었다. 이처럼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대중적 개념을 내포한 미디어 아트의 특성은 그의 첫 개인전에서도 곳곳에서 묻어나고 있다.

    1879년 잡지 《펀치(Punch)》에는 〈에디슨의 텔레포노스코프 : 사운드뿐 아니라 빛도 잘 전송한다(Edison's Telephonscope : Transmits light as well as sound)〉라는 상상화 한 장이 실렸다.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 전화와 가정용 영화를 합친 장치로, 자택에 있으면서 멀리 있는 사람의 모습을 자유롭게 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림과 설명에는 벽난로 위 스크린을 통해 실론 섬의 딸과 시·공간의 제약이 없는 통화를 하는 행복한 부부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이 그림의 가정용 화상 전화는 멀티미디어 전송기술(telephony)과 애니메이션 영화기술(kinematoscope)이 결합되면 얼마나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지를 상상하게 한다. 오늘날 가정의 텔레비전은 펀치의 삽화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단순한 기능만을 가졌으면서도 사람들의 일상을 바꾸어 놓았다.


    아직도 영화나 텔레비전과 무관하게 살고 있는 사람이 전 세계에 많긴 하겠지만, 우리는 이제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 사람을 상상할 수 없다. 우리 주변에 텔레비전 수상기가 없는 집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영화, 드라마, 코미디, 스포츠, 뉴스는 모두 텔레비전을 통해 관련 정보를 얻게 되며 하루 일과 중 텔레비전을 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해 어떤 가정에서는 어린이를 혼내는 한 방법으로 텔레비전을 보지 못하게 할 지경이다. 물론 텔레비전은 연예오락 산업의 중심이며 광고 산업의 중심이 되었다.

    텔레비전은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이미 정치, 사회에서 그 위력이 먼저 입증되었고 대중에게는 우상이 되어 갔다. 미디어 학자 마셜 매클루언(Mashall McLuhan)은 이러한 텔레비전을 보고 "미디어의 '내용'이란 실제로는 정신의 집을 지키는 개의 주의를 끌기 위해 강도가 손에 들고 있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살코기와 같은 것"이라고 묘사한다(박정규 옮김, 2002).

    백남준의 초기 주요 활동을 보면 그는 아방가르드 음악가였다. 무대에서 여러 사람과 함께 퍼포먼스를 펼쳤는데, 이때 악기를 부수는 등 극적인 행동을 보였다. 플럭서스[Fluxus : 1962년 조지 마키우나스(George Maciunas)가 처음 사용하고 선언문을 발표, '변화', '움직임', '흐름'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귀족병에 걸려 있는 지적인, 프로화 된, 그리고 상업화된 문화 모두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함. 미술에서 출발했으나 점점 장르의 경계를 뛰어넘는 예술 운동으로 발전]의 창립 멤버가 되면서 서서히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탈(脫)장르 예술운동으로 발전한다. 1960년 초, 백남준은 전위 음악가의 스승인 존 케이지가 작곡한 〈상상의 풍경 No.4〉에서 영감을 얻어 바그너의 총체예술이 연상되는 TV가 포함된 새로운 작곡을 구상하게 된다. 컬러 프로젝터, 두세 개의 스크린 필름, 스트립쇼, 복서, 살아 있는 암탉, 여섯 살짜리 소녀, 소형 피아노, 모터사이클, 사운드와 한 대의 텔레비전과 같은 다소 엉뚱한 소재의 결합을 구상한다. 당시 첨단 미디어인 TV를 이용한, 지금껏 없었던 보다 다양한 양식이 뒤섞인 새로운 시각적인 예술을 계획한 것이었다.

    1963년, 정원·지하실·다락방 등을 갖춘 3층 건물인 파르나스 갤러리에서 '음악의 전시회 : 전자 텔레비전(Exposition of Music : Electronic Television)'이라는 다소 긴 타이틀의 첫 개인전을 연다.


    12대의 텔레비전은 우연처럼 보이도록 자연스럽게 배치되었고, 그 중 4대의 텔레비전 내부는 회로를 조작했다. 음화 형태로 이미지를 반대로 바꾼 것과, 중심에서 수직 수평으로 둥근 선을 그리게 하는 것, 그리고 광파인 방송화면을 음파의 진동으로 간섭해 이미지를 과도하게 왜곡하는 추상적인 것이었다. 정상적인 텔레비전 모습을 해체시켰던 것이다. 나머지 3대는 방송전파를 연결, 음량에 따라 모니터 빛의 점이 커지거나 작아질 수 있게 했다. TV는 서로 연결되어 전자적 신호를 공유할 수 있게 했다. '쿠바TV'의 경우에는 라디오 수신기와 연결되어 수신 음파에 따라 진폭을 화면으로 표시하는 2개의 줄무늬 영상이 되게 했다. 발판은 확성기 스위치와 연결되어 음파의 자극에 화면의 불꽃 점이 커지거나 작아지는 증폭기 기능을 했다. 그리고 전시장 전체를 돌아다니며 그의 동료들과 관객은 자유롭게 작품을 만지거나 참여했다.

    전시장은 마이크에 대고 소리를 질러대는 관객, 소음기의 시끄러운 소리, 찌그러진 이미지가 번쩍거리는 TV, 만지고 잡담하는 사람들 등 그야말로 인간을 포함한 전자미디어의 복잡하고 다양한 복합 공간이 연출되었다.

    이 전시에서 두 대의 고장 난 텔레비전 중 수직동기가 망가진 한 대의 텔레비전에 〈TV를 위한 선(Zen for TV)〉이라는 제목을 붙여 옆으로 세워 놓았다. '도둑의 미끼'를 무는 개처럼 '멍청한 시청자'를 만든 바보상자 텔레비전의 대변신이다. 주사선은 정신의 본질을 들여다보는 동양적 신비의 선과 의미를 중첩시키며 금세 깊은 사유의 대상으로 탈바꿈한다. 이 작품은 비디오 조각의 면모를 갖추어 나가게 된다.

    〈참여TV〉는 오늘날 전자 키보드처럼 관람객이 참여하도록 했다. 연주자가 그들 악기를 연주하듯 텔레비전을 열어 놓고 보이스를 연주하게 했다. 작품에 관람자가 개입해 직접 변형이 가해지는 전자적 양방향 형태다. 양방향 메커니즘은 이후 〈자석TV(Magnetic TV)〉(1965)에 주어진 커다란 말굽자석으로도 확인된다. 관객이 자석을 텔레비전 수상기에 대어보며 이미지의 전자적 광파에 일어나는 왜곡 현상을 경험해 보는 것이다. 그는 전기공학자이며 발명가이고 기술자로서 대중 우상인 TV를 임의적으로 조작한 최초의 예술가다. 전자미디어에 의한 인터랙티브 예술 경향을 알 수 있다.


    그는 미디어 세상의 미래에 대해 희망적이었다. 당연하게 매스미디어의 중심에 있는 TV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TV브라〉는 따뜻한 사람의 몸과 연결해 소통의 퍼포먼스를 함으로써 차갑고 딱딱한 전자 매체에 체온을 불어넣는다.

    〈TV붓다(TV buddha)〉는 TV를 시청하는 부처를 CCTV가 찍어 텔레비전 영상으로 내보낸다. 결국 골동품인 부처는 자신을 바라보는 텔레비전 이미지를 다시 바라보고 있다. 부처는 곧 일반 시청자의 모습일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의 모습을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바라보는 자아 찾기의 시스템이다. 자아성찰의 커뮤니케이션을 가시화한 것으로 살아 있는 전자적 회로가 아니라면 표현될 수 없었을 것이다.


    전자미디어가 우리 삶의 중심이 되어가는 것을 TV를 소재로 표현한 그의 작품에서 오늘날 미디어 예술의 표본이 되는 몇 가지 경향이 엿보인다. 비디오 조각(Video sculpture)과 같은 오브제로서 미디어, 관객 참여형 인터랙티브 그리고 살아 있는 전자시스템 등이다. 그 밖에도 그의 작품에 풍부하게 내재되어 있는 매체의 비결정적 유연성과 확장성은 21세기 미디어 예술 전반에 널리 전이되었다.

    출처 : 미디어 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