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에게 따라다닌 경종 독살설은 당시 기록에도 근거가 있는 것인가요?
영조는 어머니가 무수리 출신이라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종에게 간장게장을 보내고나서
얼마 뒤 경종이 사망하여
당시 영조의 출신부터 독살설까지 신하들도 의심을 했다고 하던데
실제로 영조가 경종을 독살했다는 의심은
조선시대의 기록에도 존재하는 일정부분 신빙성이 있는 건인가요?
조선시대의 기록에도 경종 독살에 대한 의심적은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경제·금융전문가, 인문·예술 전문가 조유성 AFPK 입니다.
✅️ 네, 그렇습니다. 당시 세제였던 연잉군이 경종의 치료에 관여하였다는 점, 상극으로 여겨지는 게장과 생감을 진어한 것이 곧 연잉군이었다는 점에서 신빙성이 있고 경종이 죽어야만 연잉군이 살아남을 수 있었고, 왕이 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할 수 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당연히 그때나 지금이나 게장선물이 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게장이랑 감이 무슨 몇년에 한번 나오는 귀한 물건도 아니고
먹으려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조선은 중세 유교국가 입니다. 저주나 나쁜 징조 같은걸 진지하게 처벌하는 그런 나라에요
건강이 나빠져서 앓아 누운 형에게 굳이 건강에 나쁘다는 소문이 있는
조합의 선물을 줬단 점은 뒷말이 나오기에 충분한 이유인거죠
당연히 영조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부분을 자주 욕했구요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경종 독살설은 당시 경종 대 집권붕당인 소론에게서 꾸준히 제기되었습니다. 오늘날과 같이 부검하는 시스템이 없기에 확실한 것은 아니고 음모론과 같이 제기된 것입니다. 경종이 재위기간이 극히 짧고 또 뒤이어 연잉군을 밀은 노론이 집권했기에 독살설은 소론 쪽에서 나왔을 것입니다. 영조의 정통성이 부족했기에 즉 무수리 태생의 한계로 영조는 극히 조심하고 경계하는 정치를 펼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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