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선 삼국간에는 의사 소통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 여러 사신을 보내서 협상을 하게 된 부분에서 기록이 보여 집니다. 예를 들어,
내물왕 18년 ‘백제왕이 글을 보내 말하기를[百濟王移書曰]’, ‘우리 왕이 ‘대답해 말하기를[答曰]’, 눌지왕 34년 ‘고구려 사자가 와서 말로 통고하기를[使來告曰]’, 고구려 장수왕 12년 신라의 사신을 ‘왕이 특별히 두텁게 위로했다.[王勞慰之特厚]’, 백제 개로왕 21년 고구려 승려 도림이 ‘문 앞에서 고하기를[詣王門告曰]’, ‘왕을 모시고 앉아 조용히 말하기를[從容曰]’ 등은 표현 방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상의 기록들을 보면 삼국 간에 어느 정도 의사 표현이 자유스러웠을 것이라 짐작됩니다. 그리고 글은 전부 다 한자어로 기록 되었기에 문자는 다 동일 했을 것으로 추정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