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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식한황로156
박식한황로15623.03.22

만파식적은 정말로 있었던 이야기인가요?

왕이 피리를 불면 나라의 모든 근심과 걱정이 해결되었다고 전해지는 이야기인데 만파식적은 실제로 존재 했었던 이야기인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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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6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만파식적이란 세상의 온갖 파란을 없애고 평안하게 하는 피리라는 뜻으로 아마 박혁거세의 금척처럼 왕조의 훌륭한 통치를 비유하는 상징이었을 것입니다.

    만파식적 설화는 삼국유사에 다양하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3.22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신라시대 용으로부터 영험한 대를 얻어 피리를 만들었다는 내용의 설화입니다.

    실제 있었던 일보다는 강력한 왕권을 상징할 수 있는 신물을 등장시키기 위해 신화를 만들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고 합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왕을 위하여 동해가에 감은사(感恩寺)를 지었다. 682년(신문왕 2)에 해관(海官)이 동해안에 작은 산이 감은사로 향하여 온다고 하여 일관으로 하여금 점을 쳐 보니, 해룡(海龍)이 된 문무왕과 천신이 된 김유신(金庾信)이 수성(守城)의 보배를 주려고 하니 나가서 받으라 하였다.

    이견대(利見臺)에 가서 보니, 부산(浮山)은 거북 머리 같았고 그 위에 대나무가 있었는데, 낮에는 둘로 나뉘고 밤에는 하나로 합쳐졌다. 풍우가 일어난 지 9일이 지나 왕이 그 산에 들어가니, 용이 그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면 천하가 태평해질 것이라 하여, 그것을 가지고 나와 피리를 만들어 보관하였다.

    나라에 근심이 생길 때 이 피리를 불면 평온해져서, 만파식적이라 이름을 붙였다. 그 뒤 효소왕 때 이적(異蹟)이 거듭 일어나, 만만파파식적(萬萬波波息笛)이라 하였다.

    통일을 이룩한 문무왕에 이어서 즉위한 신문왕은 정치적 힘의 결핍과 일본의 침입이라는 문젯거리를 타결하기 위하여 지배층의 정통성과 동질성을 재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강력한 왕권을 상징할 수 있는 신물을 등장시키기 위해 이러한 신화를 만들었으리라고 추측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통일신라의 건국신화가 구체적 모습을 갖추면서 형성될 수 있었으나, 그 의미가 왕권에 관한 것으로 한정되고 사회 조직의 원리와 이념을 구현하고 있지는 않아서, 신화의 기능이 약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만파식적설화 [萬波息笛說話]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안녕하세요. 한도리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만파식적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용어는 일본의 만화 '원피스'에서 유래한 것으로, 해당 만화에서 해당 용어는 '만화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을 의미하는 표현으로 사용됩니다. 이 용어는 일상생활에서도 종종 사용되며,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됩니다. 따라서 '만파식적인 이야기'는 실제로는 없는 이야기를 뜻하는 것입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기우제를 지낸다고 비가 바로 오는 것이 아니듯이 만파식적을 부는 이유는 세상의 온갖 파란(萬波)을 없애고 평안하게(息) 하는 피리(笛)를 불었다고 합니다. '적'이 곧 피리이기 때문에 줄여서 '만파식'이라고도 불렀다고 하네요. 통일신라기 왕실에서, 정치적 불안이나 국난이 진정되고 태평성대가 오기를 염원하는 제례(祭禮)에 사용했던 피리입니다.


  • 안녕하세요. 김보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만파식적은 정말로 있었던 이야기 입니다.

    하지만 피리를 분다고 해서 근심 걱정이 다 없어지는 것 보다는 그당시에 피리 소리에 심리적 안정을 찾는 것이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만파식적은 실제로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만파"는 만주와 중국의 합성어이며, "식적"은 식민지의 정치적 지배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따라서, 만파식적이라는 용어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 기간에 만주와 중국을 통제하려는 일본의 정책을 묘사하는 용어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용어는 일본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과장되거나 왜곡된 내용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실제 역사에서는 만주와 중국에서 일어났던 다양한 사건들이 있었지만, 그것들을 모두 만파식적으로 일광화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만파식적은 일본의 정치적 목적과 이념에 따라 만들어진 용어로, 실제 역사와는 다소 차이가 있는 개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