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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검은꼬리63
흰검은꼬리6323.06.04

커피를 우리는 많이 마시는 것 같습니다.

커피를 우리는 많이 마시는 것 같습니다. 좋은 건지 모르겠으나

이 커피 문화가 언제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커피의 기원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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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7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흰검은꼬리63님.

    커피의 기원은 고대에 이집트나 아라비아 반도 일부 지역에서 발견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커피의 역사는 대략 9세기에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러나 커피의 인기와 문화적 중요성은 15세기 이후에 발전하였습니다.

    커피의 사용과 유행은 이슬람 문화와 관련이 깊습니다. 이슬람 문화에서는 커피를 신성한 음료로 여겼고, 몇몇 이슬람 지역에서는 커피를 중요한 사회적 모임과 연관시키기도 했습니다. 커피는 다양한 국가와 지역으로 퍼지며 커피 문화는 세계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커피 열매를 최초로 먹고 마신 지역은 기독교 분파인 에티오피아의 고원지대로 , 에티오피아 내의 이야기에 따르면 에티오피아 고원에서 염소를 치던 젊은 목동 칼디 가 하루는 염소들을 데리고 좋은 목초지로 가던 중 염소 몇마리가 이상한 열매를 먹고 잠도 안자고 밤새 뛰어노는 걸 보고 신기해서 먹어 보고 각성효과가 있음을 발견해 재배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커피의 기원은 에티오피아로 추정되고 있는데, 관련 설화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와 관련된 설화로 "에티오피아의 염소치기 칼디와 춤추는 염소들"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칼디라는 사람은 자기 염소들이 어떤 나무 열매를 먹고 나면 밤늦게까지 잠을 못 자는 것을 알게 된다. 열매를 가지고 수도원 원장을 찾아가 이 사실을 이야기하자, 원장은 쓸데없는 일이라며 열매를 불 속에 집어던졌다. 그러자 열매가 구워지며 아주 향긋한 냄새가 났다. 이 열매를 갈아 물에 녹여 마셔보니 한밤중까지 정신이 또렷한 채 잠이 안 왔다. 그 후 이 수도원에서는 수도사들이 철야 기도를 할 때 이 열매로 만든 음료, 즉 커피를 마시고 밤새 맑은 정신으로 정진할 수 있었다.

    커피에 대한 여러가지 내용은 아래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https://www.dongsuh.co.kr/2017/03_mediaCenter/06_coffeeClass_step1_view3.asp


  •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커피의 기원에 대해서는 3가지 설이 있습니다.

    그 중 가장 유력한 설은 '칼디의 설'이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에티오피아의 양치기 소년인 칼디(kaldi)는 어느 날 자신이 기르는 염소들이 흥분하여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았고, 그 이후 염소들의 행동을 주시했다. 며칠간 유심히 염소들을 관찰한 칼디는 염소들이 들판에 있는 어떤 나무의 빨간 열매를 먹고나면 흥분을 하게 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열매의 맛과 성분이 궁금해진 자신도 열매를 먹어보았고, 열매를 먹고 난 뒤 피로감이 사라지면서 신경이 곤두서는 듯한 황홀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곧장 인근의 이슬람 사원에 있는 사제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렸고, 빨간 열매에 잠을 쫓는 효과가 있음을 발견한 사제들에 의해 이후 여러 사원으로 퍼지게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커피 - 커피의 유래와 기원 (푸드스토리, 김한송)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세계 1위 커피 생산국인 브라질. 그러나 브라질은 1700년대 초반만 해도 프랑스네덜란드가 기아나와 마르티니크에서 재배한 커피를 수출해 짭짤한 수익을 올리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브라질은 커피묘목이나 싹을 틔울 커피원두를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와 프랑스는 아랍인들이 그랬듯 커피원두와 묘목이 유출되지 못하도록 엄격하게 감시했다. 1727년 브라질은 드디어 좋은 기회를 얻게 되었다. 네덜란드령 기아나와 프랑스령 기아나가 국경 분쟁의 중재자로 브라질을 초청한 것이었다. 브라질은 중재를 맡는 동시에 커피를 획득하기 위해 노력을 쏟았고, 결국 성공했다.

    브라질이 어떻게 커피를 손에 넣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이야기는 여러 '버전'이 있지만, 로맨스와 섹스가 얽힌 버전이 역시 가장 흥미롭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브라질의 육군 대위로 기니아 국경 분쟁의 중재자였던 프란시스코 데 말로 팔레타이다. 그는 영화 「007」의 주인공 제임스 본드에 버금가는 팔방미인이었던 모양이다. 소문난 미남이었던 팔레타는 '얼굴값 한다'는 말에 걸맞는 소문난 바람둥이기도 했다. 팔레타는 기니아 총독뿐만 아니라 총독 부인의 호감을 사는 데도 성공했다. 팔레타와 총독 부인은 짧지만 짜릿한 사랑을 즐겼다고 전해진다.

    팔레타의 능력 덕분인지 국경 분쟁은 원만하게 해결되었다. 팔레타가 브라질로 돌아가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총독의 아내는 떠나는 팔레타에게 꽃다발을 건넸다. 팔레타가 여러 가지로 '애썼다'며 감사하는 의미였다. 꽃다발에는 커피나무 가지가 잘 보이지 않게 섞여 있었다. 팔레타는 자신의 외교적 수완 혹은 사랑의 노고로 얻은 커피나무 가지를 브라질의 파라(Para) 지역에 심었다. 커피는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했고, 1765년에는 첫 브라질산 커피가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수출되었다.

    브라질에는 '파젠다(fazenda)'라고 하는 거대한 커피농원이 들어섰다. '파젠데이로스(농장주)'는 값싼 노동력으로 생산한 값비싼 커피를 통해 거대한 부를 축적했다. 파젠데이로스들이 살던 사치스러운 저택은 카사 그란데(casa grande)라고 불렸다. 대리석으로 마감된 벽과 고급 목재가 깔린 카사 그란데는 동물우리와 다를 바 없는 노예들의 거처와 대비됐다. 농원을 개간하고 유지하는 일은 엄청난 노동력을 필요로 했고, 노동력은 아프리카에서 들여온 노예들로 충족되었다.

    파젠데이로스는 노예들을 마음대로 부리기 위해 가혹한 처벌을 가했다. 채찍질은 예사였고, 손목과 발목에 쇠고랑을 채우기도 했다. 노예들은 죽을 때까지 일해야 했다. 1888년 브라질에서 노예제도가 폐지되었다. 그러나 노예에서 농장 인부로 명칭이 바뀌었을 뿐 생활수준은 더 나아지지 않았다. 커피 농민들의 어려운 생활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이는 브라질만의 사정은 아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커피의 원산지인 아비시니아(현재의 에티오피아)에서 최초로 홍해를 건너 남부 아라비아로 전달된 과정에 대한 기록은 아직 발견된 것이 없다. 그러나 에티오피아가 525년 남부 아라비아를 침공한 것을 근거로 이때, 아라비아로 커피가 처음 전파되었으며 이후 메카, 카이 등지로 퍼져 나갔을 것이라 추측하는 사람이 많다. 참전했던 흑인 노예들이 비상식량으로 커피를 지니고 아라비아로 건너가 아라비아에서 커피가 재배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몇몇 역사학자들은 기원전 1000년 경에 아프리카를 침략했던 노예상에 의해 이미 커피가 아라비아에 전파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출처:동서식품


  • 안녕하세요. 권태형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분명한 것은 모든 것에는 장단점이 있습니다. 카페인은 각성효과가 있으나 단점 또한 분명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