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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한기린210
넉넉한기린21023.11.20

조선시대 단종이 유배를 떠난이유와 일찍 죽은 이유가 뭔가요?

조선시대 나이가 어렸던 단종이 강원도 영월로 유배를 떠난 이유가 무엇때문인가요? 그리고 안타깝게도 생을 일찍 마감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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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단종은 세종대왕의 아들 중 가장 어렸기 때문에, 그의 숙부인 세조(세종대왕의 둘째 아들)가 대신 정치를 맡았습니다. 그러나 세조는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단종을 제거하기로 결심하고, 단종을 유배 보내고 결국 살해하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단종이 즉위한 뒤 1년 후 숙부 수양대군 이 반란을 일으켜 권력을 잡자 반강제적으로 실권을 빼앗기고 상왕으로 물러나면서 왕위를 빼앗겼습니다. 상왕 재위기에 일어난 단종복위운동이 일어나고, 이 사건을 계기로 권력에 위협을 느낀 숙부 세조에 의해 폐위되어 강원도 영월로 유배당하게 됩니다. 17살이 되던 해에는 끝내 그 곳에서 살해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단종이 즉위 2년에 삼촌인 수양대군이 1455년 단종을 상왕으로 밀어 국왕에 즉위핮니다. 세조가 즉위한 이후 1456년(세조 2) 6월 상왕을 복위시키려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복위 사건의 주도한 성승(成勝)과 유응부 등 무신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세종과 문종에게 특별한 은혜를 입은 인물로 세조를 죽이고 측근 세력도 제거한 뒤 단종을 복위시킬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동모자인 김질(金礩)의 고발로 결국 실패하고, 이 사건의 주동 인물 중 많은 사람이 사형을 받았으며, 단종은 이 사건 후 1457년 6월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강원도 영월에 유배되었습니다.

    영월에서 유폐 생활을 하는 동안 9월 경상도 순흥에 유배되었던 노산군의 숙부 금성대군(錦城大君)이 다시 복위를 계획하다가 발각되자 다시 노산군에서 서인으로 강봉되었다가 10월 마침내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문종은 사후에 단종을 보살하도록 황보인과 김종서 등을 고명대신으로 삼았는데 대신들의 신권이 강하다고 생각한 수양대군은 1453년(단종 1년) 계유정난을 일으켜 황보인과 김종서 등 수십명을 죽이고 단종을 폐위시켜 강원도 영월로 유배를 보냈다가 사사했습니다. 그리고 수양대군은 조선 7대 왕 세조로 등극하여 사육신과 생육신들의 거센 저항을 받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