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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철한불독44
냉철한불독4423.03.28

헤이그 특사에 파견된 사람들은 어떤 직책으로 간건가요?

헤이그 특사에 파견된 이상설, 이준, 이위종은 어떤 직책직위로 파견된 것인가요?? 고종이 보낸 게 맞나요? 회의에서 그들은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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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헤이그 특사에 파견된 이상설, 이준, 이위종은 당시 대한제국의 특사로 파견된 인물들입니다. 이들은 1882년에 체결된 '조선-미국 수호조약'을 체결하기 위해 미국으로 파견되었습니다.

    이들은 고종이 직접 파견한 것은 아니며, 당시 조선총독부에서 파견을 결정하였습니다. 이들은 조선총독부의 명령을 받아 미국에서 수호조약 체결을 위한 교섭을 진행하였습니다.

    이들이 파견된 당시에는 조선이 대외적으로 약화되고 있었으며, 이들이 미국과 수호조약을 체결하는 것은 국가의 생존을 위한 중요한 결정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미국에서 교섭을 진행할 때, 조선의 권리와 이익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미국에서 진행한 교섭은 성공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회의에서 영향력을 가지지 못한 것은, 당시 미국이 강대국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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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헤이그에 밀파된 특사는 정사(正使)에 전 의정부참찬 이상설(李相卨), 부사(副使)에 전 평리원검사 이준(李儁)과 주로한국공사관(駐露韓國公使館) 참서관(參書官) 이위종(李瑋鍾) 등 모두 3인이다. 세 특사 외에도 헐버트가 처음부터 사절단을 도왔고 박용만(朴容萬)이 미국에서 1907년 7월 초순 헤이그에 파견한 윤병구(尹炳球)·송헌주(宋憲澍)도 특사 일행을 도왔다.

    당시 이미 외교권을 일본에게 을사조약으로 강제로 빼앗겼기 때문에 정식으로 직책을 가진 특사를 보낼 수는 없었습니다. 고종의 밀명으로

    이들은 1년 전부터 움직였고 회의에 참석하고자 했으나 실패하고 좌절하게 됩니다. 회의에는 참석 못했지만 조선이 처한 현실을 세계에

    조금이라도 알렸다는 것에 의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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