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부마는 원칙적으로 아내인 공주와 옹주가 죽어도 재가할 수 없으며,당연히 첩도 들일 수 없었습니다. 부마의 결정적인 치명타라 할 수 있는 것은 명예직을 제외하고는 벼슬자리에 앉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명문가의 자손으로 태어났다고 한들, 아무리 뛰어난 학문과 재능을 갖추었다고 한들, 부마는 자신의 재능을 공식적으로 평가받을 기회인 과거를 치를 수 없고, 목민관으로서 세상을 다스리는 일 자체가 봉쇄되었습니다.
부마는 천자의 딸과 결혼한 남자입니다. 즉 공주/옹주의 남편이자 임금의 사위입니다. 풀네임은 부마도위로 황제 행차 시 황제의 암살을 막기 위해 어느 마차에 탓는지를 알 수 없도록 동행하는 예비마차인 부거를 끄는 말인 부마를 관리하던 직책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왕의 사위인 만큼 그 대우가 각별하고 왕실에서 넉넉한 지원을 해주기 때문에 편히 살 수 있었으나 명예직 외에는 벼슬을 받지 못하고 외국의 사신으로 파견되는 등 실권 없는 얼굴 마담 역할만 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