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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문어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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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덕이 기생에서 상인의 삶을 살 수 있었던 이유가 뭔가요?

제주도의 거상 김만덕은 조선시대 때 관아 소속의 기생이었는데 어떻게 상인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건가요?

관기면 죽을 때까지 관아 소속으로 알고 있었는데 아닌가요?

    2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양인(良人)인 아버지 김응열과 어머니 고씨(이름 불명) 사이에서 태어났다. 12살 때 부모 모두 세상을 떠나고 두 오빠는 목동이 되어 막일을 하며 외삼촌 집안에서 얹혀 살다가 은퇴한 기생에게 수양딸로 맡겨져 기생 수업을 받았다. 이후 제주 관가의 기생이 되었지만 가문에 누가 된다는 친가 쪽의 강요를 받고 그만두었다.

      다시 양인 신분으로 돌아온 뒤 객주 일을 시작했고 본토와 제주도 사이의 물자 유통에 수완을 발휘해 제주도에서 알아주는 대부호가 되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다른 객주들의 시기심 때문에 부정축재로 허위 신고를 당해 투옥되었다가 지역 주민들의 상소로 풀려나는 등 고초를 겪기도 했다.

      당시 심노숭이라는 문인은 제주목사인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제주도를 방문했다가 김만덕에 대한 이야기들을 듣고 글로 남겼는데 "만덕이 기생 노릇을 할 때 품성이 음흉하고 인색하여 남자가 돈이 많으면 따랐다가 돈이 떨어지면 떠나되 옷가지마저 빼앗아서 그녀가 지닌 바지저고리가 수백 벌이었다고 한다. 그 바지를 늘어놓고 햇볕에 말리는 것을 보고 동료 기생마저 침을 뱉고 욕했다. 그렇게 벌어서 만덕은 제주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되었다."라는 글을 썼다. 아마도 김만덕과 경쟁 관계였던 객주들이 퍼뜨린 루머 중 하나인 모양.


      1795년 태풍이 제주도를 강타하면서 가뜩이나 식량 생산이 저조했던 도내 농사에 큰 타격을 입혔다. 본토에서 20,000 섬을 보내지만 가던중 침몰했다.이 때문에 수많은 아사자가 발생하자 김만덕은 자신의 재산을 털어 본토에서 쌀 500섬을 사와 제주도민의 구호에 써달라고 관가에 헌납했다. 이 소식은 얼마 후 제주 전임 목사였던 유사모에 의해 조정에도 전해졌고 당시 왕이었던 정조가 제주목사를 통해 소원을 물으니 "한양에 1번 가서 왕이 계신 곳을 바라보고 이내 금강산에 들어가 일만이천봉을 구경한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정조는 김만덕을 불러 명예 관직인 의녀반수에 봉하고 직접 만났으며 금강산 유람을 하고 싶다는 청도 받아들였다.

      기생 출신 양인이 왕을 알현한 것은 전례없는 일이었고 이 때문에 당대 지식인이자 정치인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채제공은 김만덕의 생애를 다룬 만덕전을 집필했고 정약용 같은 실학자와 김정희, 조수삼 같은 문인들도 김만덕의 구휼 사업을 칭송하는 시와 글을 남겼다.

      출처: 나무위키 김만덕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김만덕은 외삼촌 집안에 얹혀 살다가 은퇴한 기생에게 수양딸로 맡겨져 기생수업을 받고 제주 관가의 기생이 되었지만 가문에 누가 된다는 친가 쪽의 강요를 받고 그만두었습니다.

      야사에 나온 이야기는 어린시절 어머니를 잃고 새어머니 밑에서 자라다 아버지까지 세상을 떠난 뒤 계모의 재혼으로 새아버지를 모시게 되었지만 양부모의 학대에 시달리다 결국 양부모가 퇴기에 팔아버린 뒤 어진 목사가 주민들에게 사연을 듣고 기생에서 양인으로 돌려보내주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