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화완옹주는 정치달의 친척인 정석달(鄭錫達)의 아들 정후겸을 양자로 들였다고 합니다. 정후겸은 어려서부터 문장에 재능이 있고 배짱도 두둑했는데, 게다가 화완옹주의 아들이라고 하여 영조의 총애까지 받았는데 그리하여 그는 16세가 되던 1764년(영조 40)에 장원서 봉사에 임명되었고, 2년 후인 1766년(영조 42)에는 별시에 합격하여 중앙 정치 무대에 등장할 여건을 마련하였다. 이어 정후겸은 수찬을 비롯하여 승지를 거쳐 21세에 개성부유수(開城府留守)로 임명되는 초고속 승진을 하였는데, 이 모든 것이 화완옹주와 영조의 후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정후겸은 조정 내에서 또 하나의 세력으로 부상하기 시작하였고, 이 세력은 당파들과 결탁하며 당시 세손이었던 정조의 세력을 위협하는 단계로까지 나아갔 습니다. 특히 정조가 대리청정을 하며 왕권을 이어 받기 위한 수순을 밟을 때, 화완옹주와 정후겸은 애매모호한 행동을 취하며 다른 이들도 대리청정을 건의할 수 없게끔 행동함으로써 정조의 행보를 방해하였었습니다. 이렇듯 왕권을 위협하는 세력으로 성장한 이들을 가만히 둘 수는 없었기 때문에, 결국 정조는 이들에 대한 숙청을 감행하였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