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양규는 거란의 2차 침입(1010) 당시 흥화진 성주로 거란군의 공격을 격퇴하였습니다. 이후 거란군이 통주에서 강조의 주력부타를 격파하고 또다시 양규에게 투항을 권했으나 거부하였습다. 오히려 양규는 흥화진의 700여명의 군사를 이끌고 통주를 공격하여 강조의 부하 1000여명의 구출하고, 이후 곽주성을 탈환하여 거란군 6000명을 베고, 성안의 7000여명을 구출했습니다.
1011년 거란이 개경을 함락하였지만 끝까지 끝까지 추격하지 못하고 급하게 강화를 맺은 이유도 후방의 양규 부대가 두렵기때문입니다. 이후에도 거란군과 계속 싸워 승리하였습니다. 양규는 1019년 공신녹권이 내려지고, 1024년 삼한후벽상공신에 추봉되고 공신각에 도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