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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빙
비비빙23.02.27

변기는 언제부터 사용됬는디 궁금합니다

화장실에 있다가 변기는 언제부터 사용되었고 누가 만들었는지 우리나라는 언제부터 변기사용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자세히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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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2.27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1960년대 말부터 국내 기술로 변기가 생산되었으며,

    1980년대 초반이 되어서야 가정에 좌변기가 보급화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변기의 역사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와 유사한 시설은 한국사에서도 발견되는데, 백제의 익산 왕궁리 유적에서 발굴된 공공화장실 유적을 보면 나무로 된 변기 위에 앉아 볼일을 보면 오물이 아래로 떨어진 뒤, 일정 수준 이상 쌓이면 수로를 통해 물과 같이 흘러나가도록 고안되어 있다. 그리고 통일신라시대 화강암으로 된 변기가 절에서 발견되었다. 볼일을 보면 오물이 수로를 통해 흘러내려가는 방식이다

    고대 로마 및 그리스가 더 위생적이었는데, 대소변을 하수도로 따로 흘려보내 노예들이 퍼서 비료로 썼기 때문이었다. 다만 이 시절 변기는 그냥 돌에 구멍을 뚫는 수준이라 당연히 엉덩이가 차가워서 노예가 미리 앉아 따뜻하게 만들거나 따뜻한 물을 적신 천을 깔기도 했다.

    대한제국에서는 수세식 좌변기가 최초로 설치된 건물은 덕수궁 석조전으로 그 당시 고종 황제의 황실로 사용되는 건물에 영국식 수세식 변기가 설치되었다. 이후, 일제 강점기때 관공서나 백화점, 호텔 등에 좌변기가 설치되었고, 한국전쟁때 미군의 영향으로 일부 시설에 설치되기 시작했다.

    출처: 나무위키 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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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아래와 같이 변기에 역사에 대해 정리해 드립니다.

    찬란한 변기의 역사

    지금은 일반화된 수세식 변기는 천연변기와 인공변기로 구분되며, 천연 수세식의 경우 지금으로부터 4000년 전에 인도의 인더스 강변 모헨조다로 유적지에서 유물이 발굴되고 로마제국에서 이용되었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오래되었다. 인공 수세식 변기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시대에 여왕의 총애를 얻기 위해 존 헤링턴 이 고안해낸 것이 최초이다.

    고대 변기의 유물
    인간의 배설 행위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나 유물은 이미 기원전 3,000년대부터 1,400년대 사이에 나타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화장실은 인도의 모헨조다로 유적에서 발견된 것으로 지금의 수세식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지만 물이 흘러 가도록 시설하여 그 위에 배설하게 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것과 그 원리는 같다고 할 수 있다.

    고대 수메르 문화의 중심지였던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유프라테스 강 하류에 있던 바빌로니아의 유적지인 고도(古都) 우르 지방에서도 기원전 2,200년의 수세의자식 변기가 발굴되었다. 하수관을 통해 분뇨를 수세용수(水洗用水)와 함께 건조한 모래땅으로 스며들게 하는 방법을 써서 강이나 바다를 오염시키지 않고도 처리할 수 있게 했다. 또한 크레타 섬의 크넷소스 궁전-지중해 미노아 문화의 중심지-에도 기원전 1,700년에 이미 도기(陶器)로 된 변을 받는 접시형 틀과 나무로 만든 변좌가 갖춰진 수세식 변기가 발굴되었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화장지의 유래

    便意(변의)가 있을 때 제일 먼저 찾게 되는 곳은 당연히 화장실이다. 그런데 막상 그 급한 용무를 끝내고 난 후에 가장 긴요하게 필요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만약이 이것이 없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할 것인가? 마를때 까지 기다릴 것인가? 정답은 바로 화장지이다.

    용변이 끝난 후 앉아서 손이 닿은 곳에 화장지가 없을 경우를 상상해 보라! 실로 난처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종이가 최초 발명된 것은 2세기경 중국이었다. 일본에서는 애도 시대(1596~1868)에 와서야 귀족, 무사들이 종이로 뒤를 닦았다고 하는데 모두가 폐지 재생품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1950년대 초반까지도 종이로 뒤지 쓰는 것을 황송하게 여길 정도로 종이가 귀했다, 70년대부터 휴지가 차츰 공급되기 시작했으나 부유층만이 그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용변을 본 후 화장지로 처리를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가지고 빈부의 차이를 가늠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미 그것은 '일반적'인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종이가 귀했던 옛날로 조금만-정말로 조금만 되돌아 가면 우리나라 사람들도 볏짚이나 채소나 나뭇잎 같은 것으로 뒷처리를 했다.

    손가락 물

    인도의 뉴델리나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와 같은 대도시의 호텔이나 상류 주택에서는 수입한 외국제의 롤 페이퍼를 사용하고 있지만 이들 나라의 빈민굴이나 시골에서는 손가락과 물을 사용하는 것이 오히려 일반적이다. 그들은 빈 깡통에 물을 담아 손가락으로 닦은 후 그 물로 손을 씻는다.

    고대의 배설 문화
    인간이 지구상에 나타난 시기를 지금으로부터 10만년 전의 '네안데프탈 인(Neanderthal-人)'부터 라고 본다. 4만년 전에 시작된 최후의 빙하기(氷河期)는 약1만년 전에 끝났는데 이때 현재의 인류와 거의 흡사한 '호모 사피언스(Home sapience)'가 나타났다고 한다.
    유구한 과거의 원인(原人)들도 살아 있는 한 무엇인가를 먹고 마시고 했음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가 기록으로 남아 전해진 것은 겨우 수 천 년밖에 안 된 과거에 불과하니 이들의 식생활과 배설에 관한 사실들을 자세히 알 길은 없다. 인류문명의 발상지는 주류 기후가 좋은 하천 유역으로 티그리스 유프라테스강, 나일 강, 인더스 강 그리고 황화 유역 등이었다.

    이들 4대 문명 발상지에서 고대의 조상들은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무엇인가를 먹고 마시며 산이나 강이나 바다에서 마음대로 배설 행위를 하면서 살았다.

    현대식 화장실의 정착

    1847년 영국 정부는 런던에 대형 하수도 시설이 완성되자 시민들에게 모든 분뇨를 하수시설에 방류해야 한다는 법령을 발표하면서 현대식 화장실로 정착되는 계기가 되었고, 오늘날의 것과 거의 흡사한 가정용 화장실은 1852년 미국의 바논산(山) 위의 호텔화장실이 최초로 알려졌다.
    한국의 경우 일제시대에 조선총독부, 특급호텔, 백화점 등에 인공 수세식 변기가 보급되기 시작하였고 해방과 더불어 미군이 주둔하게 되면서 본격화하여, 일반화된 것은 경제 개발로 GNP가 상승하던 70년대로 음식점과 유흥업소등 접객업소에 수세식 화장실의 설치를 허가 조건으로 한 것은 1977년부터 였다.

    우리나라의 화장실

    화장실 명칭의 변천사 그것이 궁금하다? 그 첫번째...
    먼 옛날 우리나라는 변소를 '뒷간'이라고 불렀다. '뒤를 본다' 라는 말을 '똥을 눈다' 라는 순 우리말이다. 초대 국회 때 어느 의원이 손을 들어 발언을 신청한 뒤 ' 뒤 좀 보고 오겠다'는 발언을 해서 항간(巷間)에 오래도록 웃음거리가 된 적까지 있을 정도이다.
    뒷간이라는 말 이외에는 '칙간(厠]間)', '정낭', '통숫간' 이란 말들도 역시 널리 통용되었다.
    사전(辭典)에서는 '칙간'은 강원도와 전라도 지방의 사투리이고, '정낭'은 함경도 지방의 사투리이며, '통숫간' 은 그냥 방언(方言)이라고만 풀이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전적 풀이들 역시 부정확한 기록을 그대로 답습한 데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경주 지방을 중심으로 한 경상도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면 변소를 두고 뒷간, 칙간, 통수간 등의 용어가 고루 다 쓰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역에 따라서는 똥구당 혹은 똥구덩이라는 말도 사용한다. 또 통시 혹은 통싯간이라는 말도 있는데 이것은 아마도 통숫간이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니 우리나라에서 고루 쓰였던 말만 대충 꼽아도 뒷간, 칙간(厠間), 정낭, 통싯간, 똥 통싯간, 똥구당, 변소 등 여러 가지 단어를 찾아볼 수 있다. 변소를 가르키는 한자의 [厠]은 중국, 일본, 한국 등에서 널리 사용되는 말이다. 그러나 한자에서 원래 변소는 [?]이고 [厠]은 [?]의 속자(俗字)로 우리나라에서는 '측'이라고 잘못 읽히고 있다. 변소의 뜻으로 '치', 기운다는 뜻으로 '칙'으로 읽는 것이 옳다고 소설가 김동리(金東里)씨는 지적한 바 있다.

    해우소 또는 화장실 그 두번째...

    절에서는 뒷간을 두고 '해우소(解憂所)'라는(불가리스 광고 보셨죠?)용어를 사용한다. 이 말은 다솔사(茶率寺)에서 산골짜기에다 멀찌감치 오두막 한 채를 지어놓고 그것을 '해우정(解憂亭)'이라 한 데서 유래한 것이다. 굳이 그 뜻을 풀어보자면 뒤를 보는 일은 곧 근심을 푸는 일이니 해우정이라고 한 것이었다. 그 후 다른 절에서도 이 명칭을 받아들여서 해우소라는 말이 널리 쓰이게 되었다.

    서울 근교 북한산성의 상운사(祥雲寺)에 가면 뒷간 앞에 아름다운 탱화와 함께 '해우소'라고 쓴 간판을 붙여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비구니들만 있는 충남의 동학사 뒷간에도 해우실(解憂室)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뒷간에 이르는 다리 난간에 해우교(解憂橋)가 있다. '근심을 더는 방' 이라는 뜻의 이 이름들은 서양의 쉬는 방(rest room)보다 훨씬 마음에 와 닿는다. 변소를 두고 하는 말들 중에 요즘 가장 일반적으로 쓰여지는 말은 '화장실'이다. 그 다음으로는 변소, 그리고 뒷간과 칙간이라는 말이 쓰인다.

    해우소라는 말이 고상하기는 하지만 조작적인 느낌이 강하다. 뒷간이란 말은 사실 자연스럽고 알기 쉽고 우아한 편이기는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써왔던 탓인지 약간 변냄새가 서려있는 느낌이다. 칙간은 뒷간만큼 우아한 느낌이 들지 않는 말이며 통숫간이라는 말도 토속적이기는 하지만 역시 분뇨 냄새를 풍기는 말이다. '화장실'은 여성의 화장 행위를 비꼬는 듯도 하고 다소 조작적인 느낌도 있지만 그런대로 아직 변냄새는 그다지 스며 있지 않은 무난한 명칭 중에 하나인 것 같다.

    동남아 태평양 연안

    화장실 문화의 발달은 그 나라의 문화, 경제 수준과도 깊은 관련이 있지만, 지역의 지리적, 자연적 여건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는다. 동남아와 태평양 연안 국가들은 경제적으로는 개발 도상국이며 다른 선진국에 비해 인구가 전 국토에 산재해 있다는 특징이 있다.

    이와 같은 나라에서는 분뇨를 처리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자연적인 방법을 많이 이용하는 경향이 있다. 동남아 내륙 지방에서는 강을 이용해 분뇨를 처리하고 태평양 연안 국가에서는 바다를 이용해 처리하는 방법이 널리 사용된다.

    방글라데시

    방글라데시 방글라데시 역시 용변을 보다 자칫 실수하여 아래로 떨어지면 목숨을 잃을 것 같은 위태로운 모양의 강상(江床) 변소를 사용한다. 데카 교외의 한 농촌에 있는 변소는 놀랍게도 강가에서 7,8미터나 떨어진 강 중앙에 세워져 있다.

    강가에서 화장실까지는 평행(平行)한 두 줄의 대나무로 연결되어 있는데 하나는 다리를 딛는 데 쓰고 나머지 하나는 잡고 건널 수 있게 한 것이다. 그 대 나무 난간을 건너기 위해서는 상당한 평형 감각이 필요한데 자칫 잘못하면 아래에 있는 강에 빠져 고기밥이 될 수도 있다.

    방글라데시 농촌의 변소는 모두가 초라하다. 방글라데시 농촌의 재래식 변소는 깊이 50,60센티미터 정도의 구덩이를 파서 분뇨가 지하에 스며들도록 한 침투식으로 구덩이 위에 굵기가 10센티미터정도 되는 통나무를 다세 개 걸쳐놓은 것이다. 개중에는 한 개의 통나무만 걸쳐 놓은 곳도 있는 데다가 통나무는 고정되어 있지 않는 경우가 예사이므로 잠시 한눈을 팔았다가는 다리가 똥 구덩이에 묻히기 예사이다. 다른 아시아권 국가들과는 달리 방글라데시에서는 인분을 비료로 사용하지 않는다.

    아마도 이는 퇴비의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절실하지 않은 자연환경에서 기인한 것이라 생각된다. 또, 방글라데시 농촌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또 다른 양식은 평지에 네 개의 기둥을 세워 그 위로 놓이 만들어진 고상식(高床式) 변소이다. 내부에는 1내지 1.5미터 정도 되는 나무를 걸쳐놓았는데 특이한 것은 분뇨가 떨어지는 자리에 분뇨 구덩이가 없다는 것이다.

    평지에 떨어진 인분은 주위에서 방목(放牧)하는 닭들의 좋은 사료가 된다. 방글라데시 남자들은 쪼그리고 앉아서 소변을 본다. 물론 방글라데시 남자들만 여자들처럼 쪼그리고 앉아서 일을 보는 것은 아니다. 아라비아의 여러 나라 남자들도 쪼그리고 앉아서 소변을 보고는 한다. 그 이유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여성의 치마와 비슷한 하의를 입고 생활하기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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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근대적인 변기는 세계 2차대전 영국군에 의해서 구덩이 위해 널판지를 올려놓고 똥을 싸는 것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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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변기는 현대적인 위생용품 중 하나로서, 인간의 생활 수준과 문명 수준이 발전하면서 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는 고대 로마 시대부터 이미 변기의 형태를 갖춘 화장실이 있었으며, 중세 유럽에서도 일부 귀족의 성에서 변기가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변기가 처음 등장한 시기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1900년대 초반까지는 한국에서도 편한 화장을 위해 각종 장치를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06년부터는 일본식 변기가 한국에 수입되어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에는 국내에서도 변기를 생산하는 기업들이 등장하면서, 변기 사용이 보편화되었습니다.

    현재의 대부분의 한국 화장실에서 사용되는 변기는 일본에서 발명된 ‘현대식 변기’를 바탕으로 개발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변기는 세계적으로도 인기를 끌고 있으며, 여러가지 기능과 함께 최신 기술이 도입되어 현대적인 생활용품으로 자리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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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현대적인 수세식 변기와 화장실의 역사는 무려 400년이 넘는다고 합니다. 최초의 변기는 1596년에 영국에서 존 해링턴이라는 사람이 발명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대중화되지 못했고 하수도 정화 시설이 없어서 그냥 통에 눈 대소변을 바깥에 그냥 버리는 게 보통 대소변 처리 방법이었다고 합니다.

    The history of modern flush toilets and toilets is said to be over 400 years old. The first toilet was invented in England in 1596 by John Harrington. However, it was not popularized at that time and there was no sewage purification facility, so the usual way to dispose of urine was to simply throw away urine and shit in a bucket outs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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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태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변기는 인류 역사와 함께 사용되어온 것은 아니며, 상대적으로 최근에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변기의 기원은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로마의 공중위생 시설로는 라틴어로 "대소교" (latrina) 또는 "프라이판드라" (prafundaria)라고 불리는 대형 공중 변기가 있었습니다. 이들 변기는 여러 명이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길가나 공공장소에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공중 변기는 중세 유럽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중세 유럽에서는 무릎을 꿇고 앉아서 사용하는 나무나 돌로 만든 개인용 변기가 사용되었습니다. 이러한 개인용 변기는 "가마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최초의 물내리는 변기는 16세기 인도의 화장실에서 처음 개발되었으며, 18세기 후반에는 유럽에서도 물내리는 변기가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로 변기는 계속해서 발전하며, 현재는 여러 형태와 디자인으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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