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 김수로왕이 인도에서 온 허황후를 신부로 맞았다라는 것은 근거가 있나요
금방 가야 김수로왕은 인도에서온 허황후를 아내로 맞았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것은 근거가 있는 이야기인가요 아니면 전설이나 설화 같은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국유사에 이러한 기록이 나와 있다고 합니다.
"“저는 아유타국의 공주로 성은 허이고 이름은 황옥이며 나이는 열여섯살입니다. 본국에 있을 때 금년 5월에 부왕과 황후께서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어젯밤 꿈에 함께 황천(皇天)을 뵈었는데, 황천은 가락국의 왕 수로(首露)라는 자는 하늘이 내려 보내서 왕위에 오르게 하였으니 곧 신령스럽고 성스러운 것이 이 사람이다. 또 나라를 새로 다스림에 있어 아직 배필을 정하지 못했으니 경들은 공주를 보내서 그 배필을 삼게 하라 하고, 말을 마치자 하늘로 올라갔다. 꿈을 깬 뒤에도 황천의 말이 아직도 귓가에 그대로 남아 있으니, 너는 이 자리에서 곧 부모를 작별하고 그곳을 향해 떠나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배를 타고 멀리 증조(蒸棗)를 찾고, 하늘로 가서 반도(蟠桃)를 찾아 이제 아름다운 모습으로 용안(龍顔)을 가까이하게 되었습니다.”
《삼국유사》 제 2권 기이편 가락국기
공주가 부모의 명을 받들어 바다를 건너 장차 동쪽으로 가려 하였는데 파도신의 노여움에 막혀 이기지 못하고 돌아가 부왕(父王)에게 말하였다. 부왕이 이 탑을 싣고 가라고 명하니 곧 쉽게 건널 수 있어서 남쪽 해안에 정박하였다........ 탑은 모가 4면으로 5층이고 그 조각이 매우 특이하다. 돌에 미세한 붉은 반점 색이 있고 그 질은 무르니 우리나라에서 나는 것이 아니다.《삼국유사》 제 3권 탑상편 금관성파사석탑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따르면 허황후는 본래 아유타국의 공주 수리라트나였는데, 아유타국 왕과 왕후의 꿈을 받들어, 서기 48년에 배를 타고 금관가야로 건너와 김수로왕과 혼인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는 고대 역사사료치고는 그 내용이 아주 구체적이라는 특징이 있다. 무엇보다 연월을 물론 날짜까지 나온다
윗글에서 볼 수 있듯이 시대적 역사적 배경으로 보면 사실인것으로 판단 되어집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국유사>의 '가락국기'에 등장한 설화 속 인물로, 김해 허씨의 시조이며 이름은 허황옥(許黃玉), 시호는 보주태후(普州太后)다.
허황후는 본래 아유타국의 공주였으나 서기 48년 배를 타고 금관가야(가락국‧지금의 김해)로 건너와 김수로왕과 결혼해 금관가야의 첫 왕비가 됐다. 아유타국의 실제 위치에 대해서는 인도, 태국, 중국 등 여러 설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인도의 아요디아 지방인 것으로 해석된다.
허황후는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를 전파했다고 해 가야 불교의 시초로 꼽히기도 한다. 태자 거등공(居登公)을 비롯하여 생전 아들 10명을 낳았는데, 그 중 둘에게는 자신의 성인 허(許)를 주었다고 한다. 가야의 몰락 이후 허씨의 자손들은 김해 허씨, 하양 허씨, 양천 허씨, 태인 허씨, 인천 이씨 등으로 분화했다고 전해진다.
출처 : 시사상식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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