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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germaan
rogermaan23.07.04

가야 김수로왕이 인도에서 온 허황후를 신부로 맞았다라는 것은 근거가 있나요

금방 가야 김수로왕은 인도에서온 허황후를 아내로 맞았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것은 근거가 있는 이야기인가요 아니면 전설이나 설화 같은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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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7.04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국유사에 이러한 기록이 나와 있다고 합니다.

    "“저는 아유타국의 공주로 성은 허이고 이름은 황옥이며 나이는 열여섯살입니다. 본국에 있을 때 금년 5월에 부왕과 황후께서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어젯밤 꿈에 함께 황천(皇天)을 뵈었는데, 황천은 가락국의 왕 수로(首露)라는 자는 하늘이 내려 보내서 왕위에 오르게 하였으니 곧 신령스럽고 성스러운 것이 이 사람이다. 또 나라를 새로 다스림에 있어 아직 배필을 정하지 못했으니 경들은 공주를 보내서 그 배필을 삼게 하라 하고, 말을 마치자 하늘로 올라갔다. 꿈을 깬 뒤에도 황천의 말이 아직도 귓가에 그대로 남아 있으니, 너는 이 자리에서 곧 부모를 작별하고 그곳을 향해 떠나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배를 타고 멀리 증조(蒸棗)를 찾고, 하늘로 가서 반도(蟠桃)를 찾아 이제 아름다운 모습으로 용안(龍顔)을 가까이하게 되었습니다.”

    《삼국유사》 제 2권 기이편 가락국기
    공주가 부모의 명을 받들어 바다를 건너 장차 동쪽으로 가려 하였는데 파도신의 노여움에 막혀 이기지 못하고 돌아가 부왕(父王)에게 말하였다. 부왕이 이 탑을 싣고 가라고 명하니 곧 쉽게 건널 수 있어서 남쪽 해안에 정박하였다........ 탑은 모가 4면으로 5층이고 그 조각이 매우 특이하다. 돌에 미세한 붉은 반점 색이 있고 그 질은 무르니 우리나라에서 나는 것이 아니다.

    《삼국유사》 제 3권 탑상편 금관성파사석탑


  •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따르면 허황후는 본래 아유타국의 공주 수리라트나였는데, 아유타국 왕과 왕후의 꿈을 받들어, 서기 48년에 배를 타고 금관가야로 건너와 김수로왕과 혼인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는 고대 역사사료치고는 그 내용이 아주 구체적이라는 특징이 있다. 무엇보다 연월을 물론 날짜까지 나온다

    윗글에서 볼 수 있듯이 시대적 역사적 배경으로 보면 사실인것으로 판단 되어집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국유사>의 '가락국기'에 등장한 설화 속 인물로, 김해 허씨의 시조이며 이름은 허황옥(許黃玉), 시호는 보주태후(普州太后)다.


    허황후는 본래 아유타국의 공주였으나 서기 48년 배를 타고 금관가야(가락국‧지금의 김해)로 건너와 김수로왕과 결혼해 금관가야의 첫 왕비가 됐다. 아유타국의 실제 위치에 대해서는 인도, 태국, 중국 등 여러 설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인도의 아요디아 지방인 것으로 해석된다.


    허황후는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를 전파했다고 해 가야 불교의 시초로 꼽히기도 한다. 태자 거등공(居登公)을 비롯하여 생전 아들 10명을 낳았는데, 그 중 둘에게는 자신의 성인 허(許)를 주었다고 한다. 가야의 몰락 이후 허씨의 자손들은 김해 허씨, 하양 허씨, 양천 허씨, 태인 허씨, 인천 이씨 등으로 분화했다고 전해진다.

    출처 : 시사상식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