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서양 문물을 가장 빨리 받아들인 이유가 무엇인가요?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서양 문물을 동아시아 중에서 가장 빨리 받아들여 여러 기술들, 경제 면에서 우위를 점했는데 일본이 서양 문물을 가장 빨리 받아들인 이유가 무엇인가요?
어떤 이유에서 그런 것인가요?
서양 문물을 도입하는 데 있어서 큰 영향을 미친 것은 1871~1873년 동안
유럽과 미국 등 12개국 시찰단(이와쿠라 사절단) 파견이 결정적 요인이 되었습니다.
그 이전 1853년 미국의 페리 제독이 서양의 신식 증기선 전함들을 끌고 와서
‘평화적으로 교역에 응하는 것’과 ‘교역을 거부하는 대신에 전쟁을 감수하는 것’ 중에
양자택일을 요구한 사건을 계기로 일본 내에서는 이미 서구열강들이 아시아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터라, 페리 제독의 사건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던 터였습니다.
그래서 이때 대규모 사절단을 보낸 것은 분명한 목적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과거 서구 열강과 맺은 불평등조약의 재협상과 일본 근대화를 위한
정부 고위 관료들의 해외 견학이었습니다.
사절단은 학교, 공장, 의회 등을 비롯한 모든 기관, 제도, 관행을 시찰하고,
수집한 정보를 토대로 서양식 공공기관이나 시설을 도입했습니다.
이후 국내 정치와 기관들을 개혁하게 됩니다.
안녕하세요. 이병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세기 중반 무렵 서양 세력은 동아시아 세계를 유럽의 무역망, 자본주의 체제로 편입시키려고 했고 이러한 서양의 우세한 무력, 불평등한 조약, 질 높은 상품 등과 대응해 방어와 역전에 성공한 나라는 일본뿐이었 습니다. 1853년 미국 군함(흑선)이 에도에 가까운 우라가에 정박해 포함외교를 개시했고, 1854년에는 요코하마에서 ‘일·미 화친조약(가나가와 조약)’을 맺었다고 합니다.. 이어 1855년에는 러시아와 ‘일·러 화친조약’을 맺었고 사할린에 이미 진출한 러시아와는 1791년부터 지정학적으로 숙명적인 관계였다고 합니다., 1855년 10월에는 교관단이 입국해 조선술과 항해술을 가르쳤으며, 1857년 9월 발주했던 군함이 드디어 도착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1858년 7월 ‘미·일 수호 통상조약’을 맺었고, 네덜란드 러시아 영국 프랑스와도 연이어 조약을 맺었습니다. 이렇게 일본이 서양 문물을 빠르게 받아들인 이유는 이미 중국이 아편 전쟁으로 어떻게 몰락 해 가는 지를 자세히 알았고 대외 적으로 서양 문물을 받아 들이는 것이 중국과 조선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아시아의 패권 국가로 성장 할 수 있다는 것을 먼저 깨달아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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