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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난몽구스218
잘난몽구스21823.03.28

나막신은 우리나라 고유의 신발이 맞나요?

나막신은 우리나라 고유의 신발이 맞나요?

나막신의 유래와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 신발이 맞는지 궁금합니다.

나막신이 우리의 것이 아니라면, 어느나라에서 도입된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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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3.28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일본, 중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다른나라에도 나무로 만든 신발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나막신의 역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말 그대로 나무로 만든 신발을 가리킨다. 옛부터 수렴진화의 일종으로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여러 나라에서 여러 형태로 나타났으며, 여기서는 일단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동아시아 전반에 걸쳐 사용하던 나무신발을 일컫는다. 한국에서는 나막신(순우리말), 목혜(木鞋), 목리(木履), 평극(平屐)이라고 부르고 중국에서는 목극(木屐, 무지)이라고 부르며 일본에서는 하타(下駄, 게타)라고 부른다. 세 나라의 고대 나막신 유물들을 보면 기본 형태는 서로 비슷비슷하다.

    나무라는 말의 고형(古形)을 보여주는 단어이다. '나무'는 모음이 이어질 때 '나ᇚ'이 되고 자음이 이어질 때 '나모'가 되었는데 이를 통해 고형을 유추해보면 '나ᄆᆞᆨ' 정도로 추정할 수 있다. '나막신'은 여기에 '신'이 붙어서 만들어진 단어인 것이다.

    고대에도 있었는지는 확증할 문헌이나 유물이 없고, 조선 중기 이후에 많은 기록과 유물을 볼 수 있다. 나막신이 처음 나타났을 때의 형태를 알 수는 없으나 처음에는 평판(平板)에 끈을 하였던 것이 차츰 사방에 울을 하게 되고, 굽을 달아 극(屐)의 형식으로 발달하여 요즈음 볼 수 있는 나막신으로 변하였다. 이와 같이 평극에 울과 굽을 다는 형식으로 된 것은 비올 때에 발에 물이나 진흙이 튀어 들어가는 불편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나막신의 형태를 보면 평극, 굽이 있는 것, 굽이 없는 것, 굽에 징이 박힌 것 등이 있었다. 조선 후기에는 남자아이가 신는 무늬 있는 것[彩屐]등이 있었고, 평극은 보이지 않는다. 재료는 다양하게 사용되었는데 특히 오동나무와 버드나무로 만든 것을 제일로 쳤다. 나무의 속성이 마르면 터지기 쉬우므로, 밀납을 녹여 겉에다 칠해서 납극(蠟屐)을 만들어 신기도 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나막신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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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엄재희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나막신은 비가 올 때 신던 신발로 나무로 만든 신발 입니다

    일본의 게다, 중국의 극과 비슷합니다

    처음에는 편편한 나무바닥에 끈을 매어 발가락이나 발끝에 걸고 다녀 일본의 게다와 비슷하였으나, 차차 발달하여 다른 신 모양과 같아지고 다시 여러 가지 맵시를 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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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나막신은 우리나라의 전통 신발 중 하나입니다. 나막신은 한국의 역사와 문화, 지리적 특성 등을 고려하여 발전한 신발로, 무더위에도 편안하게 신을 수 있고, 비가 오면 빠르게 마른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나막신의 유래는 정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지만, 4세기 경에는 이미 있었다는 기록이 남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일반 백성들이 흔히 신었으며, 특히 농업과 관련된 일을 할 때 유용하게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나막신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베트남 등 다른 아시아 지역에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는 서로 다른 문화와 지리적 특성 등이 서로 같은 방식으로 신발을 발전시키게 되어 비슷한 모양새와 기능을 갖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나막신은 우리나라의 고유한 전통 신발 중 하나이지만, 동아시아 지역에서 발전된 다른 전통 신발과 매우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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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나막신은 12세기 후반 네덜란드와 북유럽에서 시작된 중세 시대부터 착용해 왔습니다. 나막신은 경제성과 편안함으로 인해 빈곤층과 노동 계급을 위한 가장 일반적인 신발 스타일이었습니다. 신발은 나무, 가죽, 천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졌으며 종종 화려한 페인트와 엠보싱으로 장식되었습니다.

    나막신은 일반적으로 농부, 공장 근로자 및 광부의 보호용 신발로 사용되었습니다. 나무 밑창은 이러한 작업에 사용되는 날카로운 도구와 재료로부터 보호해 주었습니다. 이 신발은 내수성으로 인해 어부, 부두 노동자, 철도 노동자들도 사용했습니다. 네덜란드에서는 나막신이 실용적이고 편안한 신발 형태라는 것을 알게 된 군대에서도 나막신을 채택했습니다.

    나막신의 주요 생산국은 네덜란드였지만 독일, 프랑스, ​​스칸디나비아, 영국 제도에서도 인기가 있었습니다. 나막신은 19세기에 미국에서도 채택되어 농촌 인구 사이에서 인기를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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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말 그대로 나무로 만든 신발을 가리킨다.

    옛부터 수렴진화의 일종으로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여러 나라에서 여러 형태로

    나타났으며, 여기서는 일단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동아시아 전반에 걸쳐 사용하던

    나무신발을 일컫는다.

    한국에서는 나막신(순우리말), 목혜(木鞋),

    목리(木履), 평극(平屐)[2]이라고 부르고

    중국에서는 목극(木屐, 무지)이라고 부르며

    일본에서는 하타(下駄, 게타)라고 부른다.

    세 나라의 고대 나막신 유물들을 보면 기본

    형태는 서로 비슷비슷하다.

    -출처: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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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언제부터 형태가 변했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으나 삼국 시대 나막신 유물 중에서도 쌍북리 백제유적과 경기도 안성 통일 신라 죽주산성 유적에서 금동 신발과 상당히 유사하게 나무를 파 발을 넣을 수 있도록 갖신 모양으로 만든 성형 나막신 또한 발굴했다는 점을 보아 적어도 삼국 시대 이전에 나막신을 신었다고 보여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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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조형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나막신은 우리나라에서 만든 신발이 맞습니다. 한국 전통 나막신은 과거에 농부들이 일반적으로 착용했습니다. 나막신은 일반적으로 나막신의 윗부분은 가죽이나 천으로 만들어집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생산되는 대부분의 나막신은 일상복이 아닌 문화예술적 목적으로 생산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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