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국사기』 권23 백제본기에 “다루왕 6년(33) 2월 영을 내려 나라의 남쪽 주군(州郡)에 벼농사를 시작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아 1세기에 벼농사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이를 뒷받침하는 유물로 경기도 여주시 흔암리에서 서기전 6, 5세기경으로 추정되는 탄화미(炭化米)가 발견되었을 뿐만 아니라, 기록상으로는 신라본기에 “남해왕 13년 7월 멸구의 피해로 백성이 굶주려 창고를 열어 구하였다”는 기록과 고구려 본기에 “태조 3년(55) 8월, 나라의 남쪽에 멸구가 곡식을 해쳤다”는 기록들이 있습니다.멸구는 벼식물 에만 서식하며 지금도 매년 중국에서 기류를 타고 날아와 우리나라 벼농사에 큰 피해를 주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월동이 안 되는 곤충이므로 이들의 피해가 민생에 영향을 줄 정도였다면 벼는 적어도 서기 전 1세기 이전부터 많이 재배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 할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