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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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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양명학의 수용 양상이 궁금합니다.

성리학의 격물치지와 선지후행을 비판하고 양지 개념을 바탕으로 심즉리설을 주장했다고 합니다.

정제두가 본격적으로 연구했는데, 그의 사상과 업적도 알고 싶습니다.

    2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양명학의 사상은 <전습록>, <주자만년정록> 등에 자세히 나와 있다. 심즉리(心卽理), 치양지(致良知), 지행합일(知行合一)이 양명학의 3강령이다.

      *심즉리(心卽理)[편집]

      성리학에서는 이(理)와 기(氣)를 이원화 하는데 양명학에서는 "이치는 곧 기"(理卽氣)라고 하여 일원화한다. 성정론 역시 성리학에서는 성(性)을 이로, 마음을 기로 보는 주희의 성즉리(性卽理)·심즉기(心卽氣) 이지만, 양명학에서는 심즉리(心卽理)라고 하여 성(性)과 정(情)의 구별을 두지 않는다. 이가 곧 마음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사물은 마음 밖에 존재할 수 없다는 유심론에 귀착할 수 밖에 없다.

      성리학은 이기가 나뉘어 청정과 혼탁의 구별이 생기게 되므로 태어날 때 부터 기질이 깨끗한 자는 도덕성이 높아 조금만 노력해도 출세하고 태어날 때 부터 기질이 탁한 자는 엄청나게 노력해야 성취가 있게 되어 계급이 결정지어지는데 비하여, 양명학은 이기가 합쳐져서 자신의 마음이 이치가 되기 때문에 자신 마음에 본래 있던 양지(良知)를 함양하면 계급, 태생과 상관없이 도덕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 치양지(致良知)[편집]

      양지는 맹자가 제일 처음 말했는데, 양능(良能)으로 직관적이고 즉각적인 인간의 선천적 인식 능력을 말한다. 따라서 이것은 만인이 태어날 때 부터 다 같이 갖는 선천적인 마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왕수인은 「상산문집서(象山文集序)」에서 육구연과 그 자신이 맹자의 심학(良知學)을 정통으로 계승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왕수인은 이런한 선천적인 양지를 믿고 그것을 최대한 발현시킨다면 사욕은 소멸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또한 희로애락 등의 감정은 본래 우리에게 있으므로 그것의 자연스러운 발로가 양지의 작용이라면서, 성리학처럼 '양지는 선(善), 칠정(七情)은 악(惡)' 이라고 나누어 말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 다만 칠정에 고착해 집착한다면 그것은 욕(欲)이 되어 양지는 은폐되고 만다.

      성리학은 도덕성을 함양한 제대로된 인간이 되려면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파고들어 앎을 이루어야 된다고 하여 지식의 함양을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양명학에서는 제대로된 인간이 되려면 사물에 대한 지식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어둡게 하는 물욕을 버리라고 하여 도덕적 실천을 중요하게 여겼다. 쉽게 말하면, 성리학은 아이큐(IQ)를 중요시하여 이치에 밝으면 도덕성도 밝다고 말한 반면, 양명학은 아이큐는 도덕성과 상관없고 이큐(EQ)가 높아야 된다고 말하는 셈.

      *지행합일(知行合一)[편집]

      주희(朱熹)는 앎(知)과 행위(行)의 문제는 서로 분리 되어 있다고 보았다. 《주자어류》에서 주희와 제자의 문답을 살펴보면 “선후(先後)를 논하자면 앎이 먼저이지만, 경중(輕重)을 논하자면 실천(行)이 중하다.”고 한 대목이 있다. 주희가 격물(格物)을 중요하게 여긴 이유도 객관적인 이치를 체득한 이후에야 도덕적 판단이 가능하고, 선(善)을 행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왕양명의 경우에는 앎과 행위의 문제가 이원적으로 구분되어 있지 않았다. 왕양명은 ‘양지(良知)’가 이미 사람들에게 내재되어 있다고 말했는데, 여기서의 양지는 주희가 말하는 ‘이(理)’와 다르다. 주희의 '이'개념이 존재론적인 실체라고 한다면, 왕양명이 말하는 양지는 (도덕적)지식을 체득할 수 있는 의식이다. 왕양명에게 있어서 '마음(心)'은 도덕적 품성을 이미 내재하고 있는 게 아니라 ‘도덕적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의식’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앎은 대상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성취’될 수 있다. 《전습록》을 보면 ‘마음 밖에 사태와 사물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산의 꽃은 스스로 피고 지는 것 아닌가?’ 하고 물어보는 제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네가 이 꽃을 아직 보지 않았을 때 이 꽃과 자네의 마음은 모두 적막하였다. 하지만 자네가 이 꽃을 보자마자 이 꽃의 모습이 일시에 드러났다.” 주희의 입장이라면 이미 ‘꽃’은 외재적 대상으로서 실재하는 것이지만, 왕양명의 경우에는 꽃이라는 대상이 실재하는지 아닌지는 논의의 대상이 아니었다. 왕양명에게는 꽃이라는 대상을 지각함으로써 ‘꽃이 핀다’고 하는 지식이 완성되었고 내 마음 안의 형상으로 각인되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였다.

      이와 같은 왕양명의 지식론을 살펴볼 때, ‘지행합일(知行合一)’이라는 명제도 지식을 획득하는 과정을 행위와 분리할 수 없다는 방식으로 이해되어야지, 행위와 지식의 경계를 구분하고 도덕적 실천이 도덕적 지식을 보장한다는 의미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왕양명이 말하는 '지행합일'이란 나의 어떤 경험적 체험이 곧 지식의 형성 과정과 일체를 이룬다는 뜻이다.

      출처: 나무위키 양명학

    • 든든한소쩍새224
      든든한소쩍새224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성리학의 절대화와 형식화를 비판하며 실천성을 강조한 양명학은 중종 때에 조선에 전래되었다. 학자들 사이에 관심을 끌어가던 양명학은 이황이 정통 주자학 사상과 어긋난다며 비판하면서 이단으로 간주되었다. 18세기 초에 정제두는 몇몇 소론 학자가 명맥을 이어가던 양명학을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학파로 발전시켰다. 그는 일반민을 도덕 실천의 주체로 인정하였으며, 양반 신분제를 폐지하자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제자들이 정권에서 소외된 소론이었기 때문에, 그의 학문은 집안의 후손과 인척을 중심으로 하여 계승되었다.

      -출처:우리역사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