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골품 제도라고 하는 신분 제도때문에 신라에만 여왕이 있었습니다
왕족은 성골과 진골로 나뉘었고, 벼슬, 결혼, 옷차림, 집 등 모든 것을 신분에 따라 정해진 대로 따라야만 했답니다.
그리고 왕을 뽑을 때도 이 골품 제도를 따라야했습니다. 부모가 모두 왕족인 사람을 '성골'이라 했는데, 성골만이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부모중에 한쪽이 성골 다른한쪽이 진골인 경우에는 왕이 될 수없었습니다.
(하지만 신라시대때 최초로 진골의 신분으로 왕이 된 분이 있습니다
바로 삼국통일의 기반을 닦은 왕 무열왕 김춘추입니다)
26대 왕인 진평왕이 세상을 떠난 후 진평왕에게는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어서 왕위를 이을 성골 남자가 없었습니다. 성골 중에는 진평왕의 딸인 덕만 공주가 있었지요. 성골이 단 한 명이라도 있는 한 성골이 왕이 되어야 했기 때문에 결국 덕만 공주가 왕이 되었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 역사상 최초의 여왕이 탄생하게 되었고 그러니까 성골이 왕이 되어야 한다는 골품 제도 때문에 신라에는 여왕이 세 명이나 있었던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