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주 단심가와 이방원 하여가는 고려 말기, 이성계가 고려의 왕권을 약화시키고 새 왕조를 건국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던 시기에 지어졌습니다. 이방원은 고려의 충신인 정몽주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하여가를 지어 불렀으나, 정몽주는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충성과 절개를 담은 단심가를 지어 답하였습니다. 이러한 시조를 통해 정몽주의 굳은 의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단심가는 고려의 정몽주가 조선의 이방원이 부른 하여가에 대한 답가로 부른 시조로 노골적으로 왕조가 바뀐들 무슨 상관이냐, 얌전히 우리 손잡고 부귀영화를 누리며 새 왕조를 세워 잘 나가보자, 라는 의미인 하여가로 정몽주를 회유하려던 이방원에게 정몽주는 단심가를 통해 설사 죽더라도 고려를 향한 충심은 바꾸지 않는 다고 답한 것입니다.
여말선초의 신진사대부들은 성리학을 받아들이고 목은 이색을 중심으로 절의파인 포은 정몽주와 역성혁명파인 삼봉 정도전 등으로 나뉘어집니다. 조선을 개국하고자 하는 태조 이성계와 그 일당들에게 정몽주는 걸림돌이었고 계비 강씨는 이방원을 시켜 설득시키고 여의치 않으면 죽이라고 명합니다. 이에 이방원이 정몽주를 찾아가 설득하기 위해 하여가를 읊었고 이에 정몽주는 단심가로 화답하자 이방원은 선죽교에서 철퇴로 정몽주를 내리쳐 죽이게 됩니다.
✅️ 고려 말 정몽주를 이성계의 편으로 끌어들이고자 했던 이방원이 '우리와 함께해서 번영을 누리자' 라는 의미를 담아 하여가를 전했지만, 정몽주는 '그럴 마음이 없다. 나는 고려의 충신이다.' 라는 내용의 단심가로 답을 합니다. 이로 인해 정몽주는 선죽교에서 죽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