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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germaan
rogermaan23.04.25

조선 시대에 남자가 평생 결혼을 하지 않으면 평생 상투를 하지 않았나요

사극 드라마를 보면 조선시대 결혼을 하지 않은 남자들은 상투를 하지 않아서 총각이라고 불렀었는데 그럼 평생 독신으로 결혼을 하지 않은 남자는 일 평생 상투를 않고 총각 머리로 지낸 것인가요 조선시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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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4.25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남자의 머리모양은 어릴 적에 머리를 땋아 늘이고 다니다가 관례나 혼례(관례 겸)를 치른 다음 상투를 올립니다. 옛 예법에 의하면 남자는 20세에 관례(冠禮)를 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20세 이전에 혼인을 할 수도 있으므로 "남자는 15세부터 20세까지 관례를 한다"고 해서 최소 연령을 15세로 정했습니다. 설사 혼인을 하지 않더라도 15세부터 20세 사이에 관례를 함으로써 성인으로서의 행세를 할 수 있었는데 관례를 치른 성년 남성임을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의관과 머리모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관례의 절차를 보면 (1)택일(擇日) (2)준비 (3)시가례(始加禮) (4)재가례(再加禮) (5)삼가례(三加禮) (6)초례(醮禮) (7)자관자례(刺冠者禮)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중 시가례, 재가례, 삼가례는 관을 세 번 갈아 쓰는 기본적인 3단계 절차입니다.

    시가례는 상투를 틀고 치포관을 쓰며 사규삼 혹은 난삼을 입는 첫단계 절차입니다. 재가례에서는 초립 혹은 유건을 쓰고 조삼과 혁대를 두르고 혜를 신는 절차입니다. 삼가례때는 복두(혹은 갓)를 쓰고 난삼 또는 도포를 입고 신는 절차입니다. 초립은 관례를 치른 소년이 혼례를 올리기 전까지의 관모로 사용하게 되어 ‘초립동’이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결론적으로 결혼하지 않았어도 성년식이라 할 수 있는 관례를 치른 남자는 상투를 틀고 치포관(유생이 평상시에 쓰던 검은 관)을 쓰며 그 위에 초립이나 복두, 갓을 썼습니다.

    [복두] 주로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홍패(紅牌)를 받을 때 썼습니다.

    [초립] 형태는 갓과 비슷하고, 조선초에는 대나무를 가늘게 오려엮어 만들어, 대나무의 곱고 거친 것으로 사대부와 서민을 구별 하였다고 합니다. 색깔에 따라 조황초립, 자초립, 흑초립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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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네 아마도 그랬을것이라 생각합니다.

    조선시대에서 결혼은 모두가 하는 의무같은 것이었습니다. 당시 유교사상으로 인해 조선시대는 남성으로서의 의무나 권위가 높은 시대였기때문에 가문을 잇고 대를 이어가는 책무를 위해 결혼을 꼭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미혼일 경우 남자는 묶은머리와 땋은머리를 하고, 결혼을 하고 나서야 상투머리를 틀어 올릴수 있었습니다

    일종의 신분 표시였기에 결혼을 하지 않아 상투를 틀지 않는것은 결론적으로 사회적인 인정을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해서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사는일은 거의 없었을것이라 예측됩니다. 이러한 상투는 삼국시대의 고분벽화에도 등장할 만큼 오래된 전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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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혼인하지 않았을 경우 외자상투라 하여 정혼하지 않고 틀어올인 상투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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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닙니다.

    결혼을 하지 않아도 상투를 트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의 상투를 외자 상투, 건상투라 합니다.

    안녕하세요. 이병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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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결혼을 하지 않은 남성들을 일반적으로 "총각(總角)"이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총각이라고 해서 상투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결혼을 하지 않은 남성들도 일정한 사회적 지위와 역할이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존중받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에는 성균관이나 서원에서 학문을 공부하는 남성들 중에서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들은 학문에 전념하면서도 선비(士飛)나 선조(先祖)의 효도와 같은 도덕적 가치를 중시하여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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